| 장애인들에게 사과 농사 맡겼더니 그해 풍년이… | news | 2013-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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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 장애인 사과 농장 운영하며 사회성·책임감↑
“오늘 수확한다는 말에 어제 잠도 설쳤어요. 항상 받기만 했는데, 1년 동안 가꾼 사과들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9월 13일, 전북 장수군 덕곡마을 과수원에서 만난 김은혜(36·여) 씨가 사과 수확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150평에 달하는 과수원에는 장 씨를 비롯한 15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서툴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과를 따고 있었다. 이들은 장수보건복지센터의 정신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인 ‘드림팜(꿈의 농장) 가꾸기’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들로, 추석을 맞아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게 사과를 나눠주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북 장수군은 전형적인 산골 농촌지역이다. 재정자립도가 전북 최하위권으로 그동안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재활 프로그램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문을 연 장수보건복지센터는 지역사회 정신 보건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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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장수보건복지센터의 일자리 창출 사업인 드림팜을 통해 예비 영농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장애인들이 자신이 1년 동안 일군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
장수군의 장애인 인구가 1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은 변변치 않았던 이곳에 장애인센터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집값이 떨어진다.’, ‘동네 물을 흐린다.’는 등의 이유로 처음에는 반대하던 지역 주민들도 있었다.
정종성 센터장은 “센터에 입소하신 분들은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증세로 후천적인 정신 장애를 앓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무조건 병원에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일상 생활 속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 병세가 호전되기도 한다. 많은 편견과 우려 속에서도 센터를 설립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장수보건복지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편견을 좁히기 위해 2007년부터 ‘장수사랑봉사대’를 결성했다. 15명의 정신 장애인들이 힘을 합쳐 산골 오지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은 직접 반찬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배달을 다니면서 어르신들이 잡아주는 따스한 손길에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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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장수군농업기술센터 직원(우)에게 사과 수확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는 김은혜(36·좌) 씨. |
최명원 사회복지사는 “산골짜기에 집 한 채씩 있는 곳도 있어 독거노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 많았다.”며 “주기적으로 방문하다보니 이분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돼 지역사회와 연계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하다보니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도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구나.’란 생각에 자존감도 많이 향상됐다.”고 귀띔했다.
이를 계기로 정신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업에 눈을 돌렸다. 박스 접기, 속옷 라벨 붙이기 등 단순 작업을 의뢰받아 시작했지만, 서툰 솜씨와 한 곳에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특성상 납품기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새롭게 도전한 것이 바로 ‘드림팜(행복농장)’ 사업이다. 지난해 전북공동모금회와 장수군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3개월간의 교육과 함께 장수의 특산품인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정종성 센터장은 “사과 농사로 눈을 돌린 것은 원예 치료 효과 때문”이라며 “농작물을 키우다보면 활동 반경이 넓어져 방 안에 앉아있는 장애인들에게 운동 효과가 크다. 더불어 자연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심신이 안정되고, 가지치기와 비료주기 등을 통해 책임감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계를 명확히 그을 수 없는 농사일이다 보니, 처음부터 능률을 높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장애인들도 필요한 도구를 직접 챙겨올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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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장수군 덕곡마을에 위치한 정신장애인들의 사과과수원. 150평의 농장에 사과가 알알이 달려있다. |
“사과를 딸 때는 위로 돌리면서 따야 상처가 나지 않고 예쁘게 딸 수 있답니다.”
오전 10시, 강서구 장수군농업교육센터 강사에 조언에 따라 사과 수확이 시작됐다. 셀 수 없이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비를 입고 정신 장애인들의 사과 따기는 점심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다소 느린 행동으로 어린 강아지를 쓰다듬듯 사과 하나를 따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뤘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정신 장애인들도 드림팜 사업으로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조현병(정신분열)을 앓게 된 장태영(50·남) 씨도 드림팜을 통해 예비 영농인의 꿈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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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장태영(50) 씨가 자신이 수확한 사과를 만지며 흐뭇해하고 있다. |
처음에는 단체생활을 하는 것이 낯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는 그는 “농사를 짓고, 자연과 교감하게 되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성장한 느낌”이라며 “이제는 사람들과 열매를 많이 맺게 된 비법을 공유하면서 먼저 다가가 도와줄 만큼 사교성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열매가 맺힌 만큼 부자가 된 것 같다.”며 “농사를 짓고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말했다.
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이 지친 기색을 보였던 이날도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다독이며 사과 따는 법을 전수해주는 등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사람들과 사과 농장을 함께 가꾸면서 틈틈이 무와 배추 등을 심으며 예비 영농인으로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수군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교육받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는 조현난(44·여) 씨는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며 “다양한 영양제를 활용해 좁은 공간에서도 열매를 맺고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과일들도 키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한참을 옆에서 서성이니 “무조건 빨갛게 익었다고 맛있는 사과는 아니”라며 “은은한 붉은 빛을 띠어야 달고 맛있다.”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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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일군 사과를 나눠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던 정신장애인들의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
5시간에 걸쳐 20박스를 수확한 정신장애인들은 과수원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선별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수확에 어려움을 겼었지만 올해는 사과가 많이 열려 모두들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자동차에 사과 박스를 실으면서도 “다음 주에 선물상자를 기쁘게 받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기쁘다.”며 흐뭇해하던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수확한 농산물은 장수군 사회복지시설과 취약계층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그동안 지역사회로부터 도움만 받던 정신장애인들이 ‘드림팜(꿈의 농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일구어가고, 봉사도 실천하고 있었다. 최명원 사회복지사는 “사과 농사를 하면서 자신감을 찾고, 영농인이 되겠다는 꿈을 찾은 장애인들도 여럿 된다.”며 “숫자를 못 읽어도 농사를 짓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몸으로 습득하면서 다소 느리더라도 자신이 일군 수확물에 성취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장수군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봉사 활동과 자립 훈련이 본보기가 돼 지난 8월에는 장수군의 지원으로 장애인작업장도 생겼다. 덕분에 그동안 공간이 비좁아 미뤄왔던 교육들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 정종성 센터장은 “우리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들의 자립”이라며 “농업 기술을 꾸준히 배우면서 베테랑 농사꾼을 후견인 제도로 둬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멘토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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