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지동에서는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원시시대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넣은 그림들이 익살맞다. (상)이날 자원봉사자로 나선 손홍주 씨가 자신이 그린 벽화 앞에 서있다.(하)오세하영 씨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정해진 도안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써 참가자들은 더욱 벽화 작업에 애정을 갖고 임해 추억거리도 한층 커지게 된다.

수원의 구시가지에 자리한 지동은 오래된 집들과 좁은 골목길들이 이어진 동네이다. 구시가지라 주민들의 연령대도 높고, 낙후된 지역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 지역이 밝고, 사람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명물 동네로 거듭나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을 볼 수 있다. 올 상반기에 다녀간 자원봉사자만 해도 벌써 3,000명, 지난 3년간 6,000명에 이른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어김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벽화 그리기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지현 씨(매탄1동)는 “처음에는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게 부담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성껏 그리고 완성된 모습을 보니 뿌듯하네요. 삭막했던 구시가지가 예쁘게 변해서 기분이 좋아져요. 기회가 된다면 또 와서 자원봉사하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삼성전자 수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손홍주 씨(서울 논현동)는 부서 팀원들과 함께 자원봉사에 나섰다. “분기 행사로 이전에는 야유회를 가거나 했었는데 올해부터는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해보자는 뜻으로 모두 자원봉사에 나섰어요. 직급을 떠나 부서 사람들 모두 좋은 일에 함께 하니 친목 도모도 되고, 이 곳 주민 분들께도 좋은 일이 되니 일석이조인 것 같아요.”라며 자원봉사의 이점을 말했다.

오세하영(서울 잠실동)씨도 “이런 자원봉사가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원래 그림이나 낙서를 즐겨하는 편이라 오늘 재미있게 봉사한 것 같아요. 이곳 마을에 제 그림이 계속 남는 거라 더 정성껏 그렸어요. 비슷한 자원봉사를 이전에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 모습을 직접 스케치하고 그려넣은 거라 더 흥미 있고 뜻 깊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원인순 할머니(좌)가 유순혜 총괄작가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처음의 낯섦과 달리 2년 여의 세월을 함께하며 유 작가와 지역 주민들은 한 동네 이웃같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 마을 골목에 설치된 도르래식 평상. 햇빛과 바람을 모두 고려해 위치를 선정하고 접이식으로 만들어 미이용 시 불편을 최소화했다. 주민들의 소통을 한층 높이는 좋은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자원봉사 현장에서 동네 주민들에게 직접 마을의 변화상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도경 씨(지동)는 “전하고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동네가 밝고 환해졌죠. 헌집들은 시멘트도 새로 바르고. 따로 하려면 돈이 부담 돼 엄두도 잘 못 내요. 요즘엔 다른 동네가 된 것 같지. 지동 벽화마을이 어디냐고 묻는 관광객 있으면 직접 데리고 와서 구경도 시켜줬어요.”라고 동네의 변화에 대해 기쁜 마음을 전했다.

지동 마을 만들기의 총괄작가를 담당하고 있는 유순혜 씨는 “처음 1년 동안은 마을 주민 분들이 소 닭 보듯 했었지요. 점점 스며들어 지금은 마을 주민들과 식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힘들다고 미숫가루도 내오시고, 같이 벽화도 그리시고요.”

“처음 왔을 땐 동네가 좁은 골목길이 많아 어둡고 낙후해 보였죠. 지동이 화성 성곽을 제일 많이 포함하고 있는 동네예요. 화성이라는 보물이 있어도 이것 때문에 개발도 못해 주민들에겐 애물단지로 여겨졌고요. 무엇보다 주민 분들을 1순위로 놓고, 이들이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집 밖으로 나와 소통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마을 주민이 주인이 돼야 이 사업의 실효성이 오래 가거든요. 이제는 집수리도 먼저들 하세요. 자문도 먼저 구하시고요.”라고 말했다.

4계절을 테마로 해 지난해 조성된 벽화 ‘봄 골목’. (상)지역 아이들이 직접 나비를 그려넣었다.(하)쉼터가 되는 간이 의자일 뿐 아니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나비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여름 골목. 벽화 뿐 아니라 곳곳에 화단도 조성돼 경관을 아름답게 한다.

사실 벽화 만들기의 아이디어는 지동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나왔다. 골목길이 길어서 음침하고 통행이 없어 동네는 더욱 어두웠다. 무엇보다 동네가 밝아졌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인 결과이다.

지동 마을사업단 기노헌 팀장은 “동네 주민들과 마을투어를 하며 머리를 맞대 의견을 모았습니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얻은 계획을 바탕으로 착수한 마을 만들기 사업은 그 관리도 주민들에게 맡겨집니다. 예를 들어 동네가 푸르러지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지면 사업단에서 꽃씨를 제공해요. 그럼 직접 심고 가꾸는 것은 주민들의 몫이지요.”

“이곳이 구시가지이고 젊은층이 많이 유출돼 주민들 연령대도 높아서 사실상 지역 상권이 죽어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입소문을 타고 우리 동네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면 동네에 카페나 공방도 생겨나고, 마을 재생의 틀이 만들어지죠.”라고 마을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보도 블록을 교체하고 잔디와 꽃을 심었다. 마을의 녹화 효과 뿐 아니라 전경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낡은 집도 벽화를 그려넣어 따뜻하고 친근한 구조물로 바꿔놓았다.

이 동네의 마을 사업은 벽화 만들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살기 좋은 동네 만들기에 주력하는 마을 사업은 여러 아이디어로 마을 활성화에 힘쓰고 있었다.

일례로, 마을에는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가 있다. 마을의 교회가 장소를 제공한 이곳에선 작품 관람도 하고 화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도 있다. 다리가 휘청할 만큼 높은 원형 계단을 오르면 화성의 아름다운 전경을 관람할 수 있다. 이곳 역시도 마을사업단의 작품으로 작가와 주민들의 협업에 의해 운영된다.

(상)작가와 주민들의 협업을 통해 운영되는 노을빛 갤러리. (하)노을빛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지동의 모습. 화성 성곽이 한눈에 보인다.

이날은 마침 ‘제3회 지동 노을빛 음악회’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화성을 뒤로 하고 무대가 세워졌다. 마을의 주민들이 직접 공연자로 나서고 주민들이 관객으로 함께 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방숙희(지동) 씨는 “서울에서 시집와서 26년째 지동에 살고 있어요. 요즘엔 동네가 여러모로 얼마나 밝아지고 활기 있어졌는지 몰라요. 동네에 행사가 있으면 꼭 참여하려고 합니다. 지난 번 음악회에도 왔어요. 이웃 동생이 오늘 무대에서 벨리댄스 공연도 해요. 주민센터에서 열심히 배워서 오늘 선보인대요.”라며 동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화성을 배경으로 지동의 ‘제3회 노을빛 음악회’가 개최됐다. 지역 주민이 공연자이며 관객이다.

우리 동네 주민들이 함께, 즐겁게 아름다운 마을을 직접 가꿔가는 곳. 화성이 지척에 보이는 지동에서 아름답게 거듭나고 있는 동네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주민들,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주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도시 계획의 초석이 아닐까 싶다.

공감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