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어르신들 늦바람에 ‘두근두근’ | news | 2013-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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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세대 더이상 문화소외층 아니다…연극·합창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숨겨둔 끼 발휘
“우리들의 문화예술제를 통해 소외감은 덜고 자존감은 높였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지도강사님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모두들 멋진 포즈로 즐거운 표정의 자태를 보여주는 이 예술적 모습은 아트반의 영원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연의 바람은 휘익 스쳐지나가지만 인생의 바람은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그것도 늦바람, 뭔가가 있을 것만 같다. 초겨울 때아닌 늦바람으로 마음은 콩당콩당, 몸을 들썩이게 만든 ‘2013 청춘제’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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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청춘제’에서 장원을 차지한 평택북부노인복지관. ‘신나는 청춘’을 공연한 라인댄스팀 중 일부가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좌측이 이순(71) 씨. |
‘두근두근 늦바람’이라는 부제로 3회째를 맞은 청춘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극만을 위한 단일 축제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연극에 무용, 음악, 미술, 사진이 더해졌다. 이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송혜경 씨는 “연극은 장소가 한정돼 있고, 그러다보니 관람객도 한정적이었다.”며 “5개 분야로 확대함으로써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를 통해 출연자 가족 뿐만 아니라 일반인 참여도를 높여 축제화 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
필자가 행사장을 찾은 때는 개막일 오전 이른 시각, 공연장에서는 팀별로 돌아가며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무대 뒤편 분장실에서는 입구에서부터 팀별로 줄을 길게 늘어서 대기하며 분장이 진행됐다. 버스를 대절해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피곤도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행사를 위해 근 1년을 연습한 만큼 어르신들의 열정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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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 중마노인복지관의 전통극 ‘혹부리 영감’에서 도깨비역을 맡은 박혜숙 씨와 착한 혹부리 영감역의 김말열 씨가 분장을 마친 뒤 다정히 포즈를 취했다. |
전래동화를 전래놀이와 접목해 연극화 한 ‘혹부리 영감’의 도깨비역을 맡은 박혜숙(68) 씨는 “예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까지 했다. 1년 정도 함께 했는데 건강도 좋아지고 재미있다. 대본을 잘 못외워 문장이 가장 짧은 것만 맡았다.”며 “팀원 중 최고 어르신은 81세, 평균 나이 75세이다. 나는 어린 편”이라고 말했다.
같은 팀으로 착한 혹부리 영감역의 김말열(69) 씨는 “연극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대사를 외우는 데 집중하다보니 정신이 맑아진다.”며 “모두가 끼가 있어 함께하면 재미있고 활동을 많이 하므로 더 젊어지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전남 광양 중마노인복지관 소속의 ‘혹부리 영감’팀은 모두 여성들로 구성돼 기자더러 주민등록만 옮기면 된다며 ‘제발 오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한편, 이곳 복지관 박혜진 과장은 “평소 광양 지역 경로당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쳐 지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며 ‘기존 노인에 대한 사회인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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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첫 테이프를 끊은 인천남구노인복지관의 난타. ‘우리는 청춘 스타일’로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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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화성 나래울화성시복합복지타운 청춘 연극반원들이 창작극 ‘저승에 다녀 온 놀부’를 열연하고 있다. |
한편, 이날 공연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인천남구노인복지관은 난타, ‘우리는 청춘 스타일’ 작품으로 첫 공연부터 관중들의 혼을 쏙 빼앗았다. 어르신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난타를 통해 소통하며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멋진 작품이었다. 말미에는 세계를 감동의 무대로 들썩거리게 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어르신들이 신세대의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세대 간 소통을 원할히 하며, 즐길 수 있었던 장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익히 알려진 놀부전을 각색한 ‘저승에 대녀 온 놀부’를 통해 요즘 세태의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도 안계시고 몸도 예전 같진 않지만 그 시절 그 시간 누렸던 행복을 베풀며 살아가자는 소박한 바람을 무용으로 펼치기도 했다.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절망만이 가득했던 50년대 중엽을 무대로 등장시킨 ‘불효자는 웁니다’ 역시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출연팀의 진한 감동 연기에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공연에 빠져들었다. 할머니들은 공연 무대를 통해 옛 시절을 회상하며 짠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다가 손가방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몰래 닦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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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시노인종합복지관 해울 미술반의 회화전 ‘에술적 승화로의 초대’. 고흐, 피카소, 뭉크 등의 명화작가 작품을 전시했다(좌). 봉제산어르신복지센터의 ‘로댕의 친구들’은 생각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고흐 외 여러 작가들의 작품 이야기를 등장시켰다.(우) |
무용, 연극, 합창 공연 13개 팀의 무대 외에도 바깥 공간에서는 어르신들이 그동안 생활 속에서 직접 배우고 창작한 사진과 미술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바다와 인간,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이라는 사진 전시를 포함해, ‘아트북으로 만드는 나의 인생 이야기’ 그림책 전시, 창작극 ‘한가로운 오후의 노인정’ 등 일상 생활 속에서 즐겨온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예술 작품들이 소개됐다. 1년 못미쳐 연습한 솜씨로 기성 전시회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내 탑골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환(79) 씨는 “아트북 반원들이 지난 3월부터 아트북 기초반에서 그림 연습을 많이 했다.”며 “이번 행사가 끝나면 복지관 내 탑골 미술관에서 연장 전시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한편 “도슨트 활동은 교수를 초빙해 교육을 받고, 다른 미술관을 다니며 보고, 듣고, 작품 내용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한다.”며, “여러 사람에게 작품을 안내하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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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골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 중인 김태환 씨가 행사장에 전시된 서울노인복지센터 아트북 반원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한편, 행사장 입구를 장식한 사진전에는 기성작가 못지 않은 훌륭한 작품 120여 점이 전시됐다. 부부가 함께 안산 단원구노인복지관에서 문화 프로그램 활동을 하며 각자 사진을 출품해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산 노신사 오기환(77) 씨와 배성자(72) 씨 부부를 만났다. 곁에는 딸과 사위도 동참했다.
명함을 건네주는 배 씨, 들여다보니 지금도 한 패션회사 감사로 재직 중이시다. “남편은 전직 학교장이고 나역시 교직을 퇴직했다.”며 “학교 퇴직 후에도 남편과 함께 복지관에서 사진촬영 활동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다.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같은 복지관 소속으로 사진을 출품한 전광식(75) 씨는 “사진 찍을 때 사물을 무조건 중심에 놓고 찍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강사님이 사진 찍기 숙제를 내주시고, 구도법, 셔트 취급법 등을 잘 가르쳐줘 지금은 기본이 잡혔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예술강사(김희정 씨)를 가리키며 “놓치기 아까운 선생님이시다. 안산에서 우리를 계속 지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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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안산시에 거주하는 오기환 씨 부부가 ‘금잔화의 미소’란 제목으로 출품한 사진 작품을 배경으로 다정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
함께 사진찍기 공부를 하고 있는 안태일(80) 씨는 “강사 선생님께서 강의시간에 후레쉬 사용법 등 수정방법을 사례를 들어 잘 가르치신다.”고 덧붙였다. 안 씨는 “젊었을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며 “눈, 코에 중심을 두고 찍었는데 강의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나이들어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젊음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좌석버스를 20년이나 운행했다는 안 씨는 여든의 나이답지 않게 직장을 다니고 있다. “돈을 벌어 살림에도 보태고, 손주들한테 용돈 주고 친구들 사귀며 즐겁게 산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이 들어서도 직장에 다닐 수 있는 비결로 그는 “성실하고 진실하고 열심히 하라. 회사가 잘 되는 게 내가 잘 되는 길이다. 나는 회사에서 땀흘리며 가장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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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어르신들의 사진 작품을 감상하며 담소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어르신들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
어르신들의 인생 경험이 함께 숨쉬는 이번 공연과 전시는 세대와 계층을 넘어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소통을 활성화하는 매개체가 됐다. 작품 발표회를 가진 어르신들은 해당 지역 주변 복지관, 어린이집 등을 순회하며 서비스 공연을 펼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공연 뒤 포토존에서 기념 촬영을 하다 만난 경기 평택북부복지관 출연팀 ‘신나는 청춘’의 이순(71)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청춘제를 준비하며 열심히 하다보니 건강을 되찾고 지금은 회복됐다.”며 “친구들과 함께하는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재미를 찾았다. 모든 게 예쁘게만 보인다.”고 말했다. 누구나 춤을 추면 힘이 솟고 미소가 흐르며 막힌 에너지가 생성되는 신비한 힘이 생긴다는 닉네임과, 작품명이기도 한 ‘신나는 청춘’이 올해 영광스런 장원을 수상했다.
청춘제를 주관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박재은 원장은 “2년 전 처음 청춘연극제가 열렸고, 3년차인 올해는 연극뿐 아니라 다른 분야와 함께 하는 축제로 새롭게 청춘제를 시작했다.”며 “연극과 음악, 무용, 미술, 사진 등 분야는 다르지만, 어르신들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청춘제를 통해 모두의 마음에 소중한 울림이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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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박재은 원장은 “청춘제를 찾아 준 모든 분의 마음에 소중한 울림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교육과 김현목 사무관은 “문화융성 시대에 맞춰 문화적 소외를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향후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확대해 삶에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도록 해나갈 것”이라며, “청춘제가 어르신 문화예술의 씨앗이 돼 문화를 즐기는 법을 알고 스스로 향유하고 또 창작해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분들이 문화융성 전도사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을 해나겠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올해 전국 169개 노인복지기관에서 어르신 5,400여 명을 대상으로 270여 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2014년에도 프로그램과 시설을 확대해 어르신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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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제 사회를 맡은 예술강사 최현주 씨의 구령에 따라 공연장을 꽉 메운 관람객들이 손가락을 이용해 놀이를 하며 극 중간 짜투리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
청춘제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성의 참여율이 낮았다는 점이다. 평균 팀원 수가 15명 내외였는데 남성은 약방의 감초처럼 한두 명 정도 참여했다. 남성이 한분도 참여하지 않은 팀도 있었다.
내년엔 청춘제 무대에서 남성 출연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관람객 중 젊은이들도 많이 참여해 어르신들의 축제마당을 보고 즐기며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끼리끼리 따로 노는 문화가 아니라 계층간, 세대간 통합으로 문화융성이 이뤄져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는 ‘청춘제’는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돼온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공연과 전시를 한자리에서 교류하고 즐기는 축제의 자리이다. 1, 2회 때는 ‘청춘연극제’로 연극 분야만 개최됐지만 올해는 연극, 무용, 음악, 미술, 사진 등 5개 분야로 확대돼 풍성하게 열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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