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나그네들과 사랑에 빠진 남자 | news | 2014-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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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그네’ 매표소 장수명 씨
요일마다 규칙을 정해놓고 옷 색깔을 달리한다. 무지개색으로 갈아입는 옷을 보고 나그네가 말을 걸어올 것 같아서다. 월요일은 분홍, 화요일은 노랑, 수요일은 빨강식으로 정해 놓았다. 직장인이 지나가는 출근시간대에는 올드팝송, 주부들을 위한 시간대에는 트로트,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대에는 최신 비트 음악을 들려준다. 삶의 지표가 될 만한 글귀와 자작시도 선물한다.
2살 때 열병을 앓아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장수명(42) 씨가 부천시 중동 1.5평 규모의 매표소 공간에서 뿜어내는 이야기다. 소아마비의 영향으로 말이 어눌하고 한쪽 손까지 굳은 그의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으로 인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다행히 관찰력과 언어감각이 뛰어난 그를 알아준 선생님 덕분에 고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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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명 씨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100여 통의 이력서를 냈지만 실패, 매표소 운영권을 따내 ‘행복한 나그네 매표소’라는 이름을 붙인 일터를 냈다. |
직장에서 역시 장애인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를 피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알게 된 후부터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고 오히려 일반인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장 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가스 밸브 회사에 들어갔다. 6년간 근속하면서 지게차 운전, 야근과 철야근무는 물론 누구든 한 달 내에 그만 둔다는 세척실에서 1년 이상을 버텼다. 밸브를 3D 입체도면도로 보여주는 컴퓨터 설계도면을 완성해 공로상을 받았으며, 창립기념일에는 모범사원상을 받았다. 그러나 어렵게 입사한 회사의 부도로 실직하고 말았다.”
이후 직장 구하기에 나섰다. 100통이 넘은 이력서를 냈지만 장애를 가진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공공근로와 껌딱지 떼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장애인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매표소가 눈에 들어왔다. 1999년 7개월여 구청 건설과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따낸 매표소가 행복의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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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들의 쉼터에서 자신이 쓴 ‘행복한 나그네 매표소’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
장 씨는 “매표소 이용객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행복한 나그네 매표소’라고 지었다. 중학교 앞이라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장애라는 이유로 방황했던 청소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다독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자신의 고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마음을 고쳐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벼룩시장를 열어 마련한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내기도 했다. 개인이 일일시장을 열어 이런 기록을 낸 것은 드문 일. 그간 매표소를 거쳐간 고객들의 응원이 컸다. SNS 친구(카카오톡 1,232명, 트위트 1,200여 명, 페이스북 782명, 싸이월드 898명)가 그의 대인관계를 말해준다. 부천시의회가 수여한 부천의 미래상, 모 신문사가 준 시민대상, MBC 느낌표의 칭찬상도 받았다. 부천시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그의 일터는 여느 매표소와는 달랐다. 종일 음악을 선물하기 위해 마련한 스피커에다 ‘예쁜 얼굴 보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거울과 액자, 고객의 소리를 담는 우편함, 나그네들이 쉬어 가라고 구청에 건의해 설치한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 의자는 자비를 들여 1년에 한 번씩 페인트 칠을 한다. 의자색도 그가 연출하는 옷 색깔처럼 고운 빛깔로 입힌다.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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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여 편의 시를 쓴 시인인 그는 매표소 게시판에 주기적으로 시와 글귀를 게시한다. |
매표소 옆 가로수와 들꽃을 벗 삼아 쓴 시, 차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고객들과 나눈 자칭 ‘5분 데이트’를 바탕으로 수필집 ‘행복한 나그네 매표소’와 ‘환타빛 오후’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소아마비라는 증표가 나를 많이 힘들고 아프게 했다. ‘나의 장애는 말이 없다. 나의 장애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의 장애에 돌을 던지나.’라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철이 든 후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와 힘도 같이 주셨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제는 그 증표를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불도장이라고 믿고 있다.”
장 씨는 이어 “그로 인해 삶이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모른다. 눈길, 웃음, 고통, 기쁨, 악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겐 혈액도 중요한 나눔이다. 가끔 예고 없이 매표소 문을 닫을 때가 있다. AB형 혈소판이 부족하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병원으로 달려간다. 25살 때부터 이어져온 일이다. 의사 선생님이 헌혈다수자로 상을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픈 이들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탠 것으로 족하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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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는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불도장”이라며 1.5평의 매표소 공간에서 하트 모양을 그리며 행복해하고 있는 장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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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 뒤에 있는 육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장 씨는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랑이 아쉽다고 말했다. |
‘앙돼요’, ‘궁금하면 5백 원’, ‘느낌 아니까’ 등 유행어를 꿰고 있는 그는 “드라마나 뉴스,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고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절망의 터널을 헤매다 발견한 이 매표소가 추위를 느끼는 이들에게 따듯한 이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라산을 6번이나 올랐을 만큼 등산광인 그는 “산은 6월의 한라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산 정상에서는 식물의 성장이 들에서보다 2개월 정도 늦기에 이맘때쯤의 풍경이 가장 좋단다. 사랑을 꿈꾸며 쓴 시가 600여 편 되지만, 사랑의 결실은 이루지 못했다. 인연은 많았지만 사랑하는 여성들은 매표소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나그네처럼 떠나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매표소 옆 육교에서 결혼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또 하나의 바람은 ‘거리의 나그네들과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는 일이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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