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세 우리 어머니 장수 비결 알려드릴까요?” | news | 2014-05-08 |
 #1 : |
11.jpg |
노모 모시며 1만 시간 자원봉사 조우옥 씨
“막내딸, 사위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두 내외에게서 찡그리는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들이 못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 방을 잘 꾸며놓고 ‘어머니 이제는 아들 집으로 오셔야지요.’라고 해도 나는 여기서 살다 갈 거야.”
올해 98세인 이필남 어르신은 10남매를 낳았지만 넷을 잃었다. 51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자녀들을 키웠다. 6남매는 어르신의 올곧은 가르침 속에 성장해 각자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일궜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모봉양을 서로 미루는 경우도 있지만 이 집안은 다르다. 일찍이 혼자돼 고생한 어머니의 노후를 서로 편하게 해 드리고 싶어 한다.
 |
| 4년 전 경주 여행 때 다보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필남 어르신과 딸 조우옥 씨.(사진=조우옥) |
그러나 어르신은 막내딸인 조우옥(53·부천시 성곡동) 씨를 선택했다. 맏며느리이기도 한 조 씨가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친정어머니와 18년째 살고 있다.
“어머니는 70세에 백내장에 걸려 7년 동안 앞을 못 보셨다. 수술을 권해도 어머니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거절하셨다. 수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우리 가족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평균 수명 연장을 들며 설득했다. 결국 마음을 열고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결혼해 아이까지 생긴 저를 보고 눈물을 보이셨다.”
20세 때 보고 27세에 다시 마주한 조 씨는 변해 있었다. 아가씨 때의 흔적은 사라지고 손자를 안고 있는 조 씨를 어머니 이필남 씨는 ‘내 딸이 맞느냐’며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수술 후 다시 세상을 보게된 어르신은 6남매가 살고있는 여주, 인천, 울산을 돌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자식 집을 찾아 나선 어르신의 순례는 조 씨의 집인 부천에서 멈췄다.
 |
| 올해 98세인 이필남 어르신은 막내 조우옥 씨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
“오빠, 언니들이 집안을 단장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화초를 사 놓아도 안 간다고 하신다. 오빠,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형제가 왔다가는 날에는 우리집 양념인 참깨, 고춧가루와 생활용품이 없어진다. 엄마가 형제들에게 싸주신 거다.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그래서 형제가 온다고 하면 일부러 싸주기에 좋을 만한 물건을 마련해 어머니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방문한 자식들에게 챙겨주신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궁합이 있는 것 같다. 나와 엄마 사이가 그렇다.”
치매 3급인 어르신은 과거는 잘 기억하는데 최근 겪은 일은 거의 잊어버린다. 과거 소를 키울 때 소죽을 끓인 기억을 더듬으며 박스만 보면 오리고 묶어서 방안에 쌓아두신다. 소죽을 끓일 때 박스를 연료로 사용했던 기억 때문이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조 씨는 박스를 모아둔다. 어르신은 박스를 받아들고 흐뭇해하며 작업을 한다.
조 씨는 “사실 그 박스는 쓸모없이 공간만 차지하지만, 어머니가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며 박스를 구해놓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큰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배려가 아닐까 싶다.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는 화초 잎이 넓게 펴져 있는 것이 부산하다며 끈으로 꽁꽁 묶는다. 어머니가 묶어놓은 걸 풀면 서운해 하실까봐 밤에 몰래 풀어놓는다. 낮에는 어머니가 하신대로 다시 묶어 놓는다.”고 털어놨다.
 |
| 하루라도 봉사 활동 현장에 가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는 조 씨가 요양원에서 어르신과 함께하고 있다. |
조 씨는 친정어머니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에게도 신임이 두텁다. 신혼 시절 시어머니의 친정에서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었다. 형제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장면을 보고 손을 들었다. 시외조모님을 모시겠다고 조 씨가 나선 것이다. 시외조모님을 1년여 모시게 되면서 시어머니와도 남다른 공감대를 형성했다. 시어머니는 친정 모친의 초상을 치르고 나서야 부모님께 더 잘 해드리지 못했던 한을 토로하며 며느리인 조 씨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
조 씨의 시어머니는 “너나 나나 친정어머니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부분이 똑같다. 연로한 모친이 얼마나 사실지 모르니 공손하게 잘 해드려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어르신이 좋아하는 떡과 연한 음식들을 챙겨주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조 씨는 양가 부모님에게 더욱 정성을 들인다.
시누이와의 일화도 남다르다. 결혼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시누이를 자식처럼 키웠다. 부천으로 분가하면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누이를 아예 신혼집으로 데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한 시누이에게 딸을 보내듯이 장롱과 침대, 화장대 등을 마련해 시집을 보냈다. 올케인 조 씨는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로 통상적인 시누이와 올케의 불편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
|
휴가 나온 손자와 함께 한 이필남 어르신. 손자는 외할머니가 장수하셔서 기네스북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
| 조 씨의 봉사인생 뒤에는 “어머니 봉양하며 봉사활동 열심히 하라.”는 남편(우)의 응원이 있었다. |
조 씨의 사랑은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웃사랑 나눔에 앞장서며 수해, 재해 발생 시 전국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친다.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에 1만 시간 봉사자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적십자사에 기록된 봉사시간은 1만2천여 시간. 부천시 자원봉사센터에 등재된 봉사시간도 5천 시간이나 된다.
마을 반장, 통장, 부녀회를 시작으로 그의 20년 봉사인생이 시작됐다. 적십자사 봉사원을 거쳐 동 부녀회 회장, 여성 예비군으로도 활약한다. 장애인 시설 부천혜림원이 주관하는 사랑의 가정 위탁으로 10년째 지체장애아를 돌보기도 한다. 그의 수첩은 복지관 급식, 시립노인요양원 세탁, 농촌마을 배꽃 수정 등 봉사일정으로 빽빽하다.
사진장이라 불릴 만큼 사진 솜씨에도 일가견이 있어 각 단체의 전속사진사로도 불려 다닌다. 그가 찍은 사진은 수십만 장에 이른다. 사진은 ‘역사의 보고’라는 신조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무 조건 없이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남들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찾아서 쓸 수 있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 ||
 |
|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낸 뒤 나라사랑이 더 진해졌다는 조 씨가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최근 전역한 아들과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하루라도 봉사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 어르신들이 ‘또 언제 오느냐’며 손을 잡고는 아쉬움에 후일을 약속한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일손 돕기에 동참하기도 한다. 올해 초 눈 폭탄을 맞은 강릉에 간 적이 있다. 어른 가슴까지 쌓인 눈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팠다. 허리가 휘도록 눈을 치워주고, 시름에 잠긴 수재민들을 격려해줬다. “
 |
| 조우옥(가운데) 씨는 올해 초 눈폭탄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강릉으로 달려가 제설 작업을 도왔다. (사진 =조우옥) |
 |
| 벌과 나비가 줄어 개화시기에 맞춰 수정을 해줘야 한다는 소식에 배밭으로 달려간 조우옥(왼쪽) 씨가 배꽃 수정을 도와주고 있다. (사진=조우옥) |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 돈을 써 가며 봉사활동을 떠나는 그를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조 씨의 남편 김동철(51) 씨는 “‘주는 게 받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봉사를 하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 집사람의 기를 받아 집안에 활기가 돈다. 혼자 벌어 알뜰히 써도 되니 더 공손히 어머니 봉양하며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봉사자가 됐으면 한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조 씨의 가족은 4년 전 이필남 어르신이 94세 때 경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나들이를 제안하자 극구 사양했던 어르신은 휠체어를 타고 둘러보았던 유적지를 떠올리며 지금도 그 때를 추억한단다. 그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대가로 복을 받아서 어머니가 장수하시는 것 같다며 어머니의 100세 기념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공감코리아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