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백기천(人百己千)!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형곡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 10월부터 태권도장에 다닌 이후로, 씩씩한 목소리를 내며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늘 하던 소리였다. 

인백기천이란 '다른 사람이 백번을 노력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한다'는 으로, 한계에 이르고 경지에 이를 때까지 노력하라는 뜻이다. 신라시대 최고의 천재학자로 알려진 최치원이 12세때 당나라로 유학갈 때 아버지가 써준 글귀로, 최치원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 2013년도 구미교육장배 태권도대회 겨루기 시합 (옥계초) 심규민 대 (형곡초) 김경록 학생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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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니 키도 작은 편이고 내성적이라 학교 생활이 짐짓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한날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맞이하는 운동회에 구경 가게 되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기 전에 반별로 앉아 있는 아이들의 틈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혹시나 아는 체 하면 부끄러워 할까봐 적당히 거리를 두며 시선을 아들에게서 떼지 않았다. 반 아이들과 어떻게 얘기하고 교류할까 궁금했던 차에 마침 반 아이들과 함께 있어 행동거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아들 옆에 앉은 한 아이가 계속해서 아들 머리를 툭툭치며 장난을 쳤다. 아들은 별달리 대처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게다가 달리기 할 때는 가관이었다.

달리는 모양새가 마치 펭귄이 달리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여서, 아들을 믿은 나머지 내심 1등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온 나는 이내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아들은 몸치였고 게다가 소심하기까지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움직임이 둔하면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활발하게 잘 뛰어다니며 운동량이 많을 수록 성격도 활달해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운동회에서 본 우리 아들은 성격과 육체적 능력면에서 F학점이었다.

고민하던 차에 집사람에게 얘기해 아들에게 무엇이라도 운동을 시켜야 되지 않겠냐며 알아보자고 했다. 마침 친구가 풋살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어린이 축구단에 가입하기를 권유했고, 일주일에 몇 번 학교 마친 뒤에 풋살장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축구도 역시 단체운동이라서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기존에 공을 잘 차고 잘 뛰어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기에는 아들이 너무나 소심했다. 한 달을 다니자 아들은 이내 흥미를 잃었고 엄마에게 가기 싫다며 울먹거렸다.

▲ 2013년 구미시장기배 태권도 대회 개회식 태권도를 연마한 아이들의 눈빛이 모두 한결같이 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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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다가는 더 탈이 날까 싶어 그만두게 한 뒤로, 아버지인 내가 아들에게 나름 운동을 시켜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공원에 데려가 배드민턴도 쳐보게 하고 달리기도 연습시켜 보았지만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운동이 효과과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집에서 팔굽혀 펴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만은 꾸준히 시킬 수 있었다.

2학기가 되어서 아들과 같은 반을 다니는 딸을 둔 친구가 자기 딸과 같이 태권도장에 보내자고 얘기했다.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좀 더 대범해지고 좀 더 자라게 되면 태권도를 시켜 볼까 생각을 했기에 당장은 같이 보내지를 못했다.

그러나 친구의 딸이 태권도장을 즐겁게 잘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는 곧 마음을 고쳐먹고 같은 도장에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모습과 태도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진지한 얼굴로 '인백기천!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늘 외쳤다.

예의와 절도를 중요시하는 태권도 교육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아들은 적응을 했고 꾸준히 도장을 다녔다. 그리고 매번 승급 심사를 보며 바뀌는 띠는 아들의 성취감을 높여만 갔다.

흰띠를 검은띠로 바꾸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린다. 노란띠, 노란줄띠, 초록띠, 초록줄띠, 보라띠, 보라줄띠, 파란띠, 파란줄띠, 밤띠, 밤줄띠, 빨간띠, 품띠를 거쳐야만 드디어 검은띠를 허리에 매게 된다.

띠를 바꿔 달며 성취감을 맛보기 시작한 아들은 어느새 활달해지고 씩씩해져 갔다. 그리고 예의범절 또한 깍듯한 모습이 아들의 모습을 더욱 대견스럽게 느껴지게 했다.

아들이 태권도장을 초등학교 1학년 10월부터 다닌 후로 1년 5개월이 지나 3학년 1학기 초무렵이었을 즈음, 태권도장으로부터 아들을 태권도 겨루기 시합에 내보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소심했고 몸치였던 아들이 웬만한 체력이 없이는 안 되고 몸이 재빨라야만 할 수 있는 겨루기 시합에 나가게 된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처음 나간 경북 문경에서 열린 경북지역선수권대회에서는 아깝게 시합에서 졌다며 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합에 진 것은 대수롭지 않았고 꼬맹이 아들이 집을 떠나 1박 2일로 시합을 다녀 온 자체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두 달 뒤에 구미시 박정희 체육관에서 열린 구미시장기 대회에서 아들의 시합장면을 보게되었다. 마치 내가 중요한 시험을 앞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고 긴장감이 밀려왔다. 아들이 시합장에 들어서 상대편에게 예를 갖춘 뒤 겨루기에 들어갔다.

아들의 시합을 보면서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흥분스러울 수가 없었고 아들이 최선을 다해 시합을 하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화이팅을 외쳤고 아들의 시합에 푹 빠지게 되었다.

여태껏 TV를 통해 봐오던 그 어떤 시합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그날 자신보다도 한 학년 위인 4학년 형이랑 맞상대를 해, 이기기까지 한 아들은 나의 영웅이 되었다. 나의 눈에는 소심하며 겁이 많고 나약했던 한 꼬마아이가 어느새 용감한 사내아이로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태권도를 연마한 이후 아들은 참으로 듬직한 존재가 되었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아들은 예의 바르고 어른스러우며 침착하고 배려심이 뛰어나다. 초등학교 1학년인 여동생에게는 든든한 오빠이자 놀이 상대로서 그리고 훌륭한 선배로서 더할 나위없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태권도장을 다닌 후로 아들에게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현관 앞에서 치르는 우리들만의 의식이 있다. "착하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정의롭게!"라 함께 외치며 매일 아침 하이파이브를 한다. 처음 아들이 도장에서 배워온 '인백기천'을 응용해 우리들만의 구호로 만든 것이다.

▲ 형곡초 김경록 학생 대회 나가기 전 도장 앞에서 기념 촬영 소심했던 아들이 어느새 씩씩한 사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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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들이 늘 최선을 다하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고 태권도를 꾸준히 연마함으로써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릴적부터 태권도를 꾸준히 연마해 더할 나위 없이 바르게 자란 중학교 시절의 친구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당시, 학교에서 일명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마치고 3층에 있던 교실로 올라오는 학교 전체 아이들을 가로 막으며 못 지나가게 으름장을 놓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도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 친구는 혼자 나서서, 길을 막고 있던 못된 아이들에게 당당히 얘기를 해 우리들이 지나갈 수가 있었다. 혼자서 그 못된 녀석들과 대적할 생각을 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다행히 아무일 없이 끝났지만 그 친구의 정의로운 행동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에게 늘 친절했고 유머도 있었으며 한없이 순수했다. 공부도 틈틈히 열심히 해 곧잘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태권도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었지만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겸손했고 바른 친구였다.

나의 아들도 그 친구와 같은 성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을 한 후로는 만나지 못했지만 친구는 어른이 되면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했고, 현재 나의 아들도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난 아들이 태권도를 통해 올곧고 바른 인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만해도 대만족이다. 아들이 장래 어떤 일을 하든 늘 머리와 마음속에는 바른 생활태도가 정립되어 있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잘 해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권도는 단순한 육체적인 운동이 아니라 자녀의 일생을 바르게 인도할 또 하나의 교육임을 아들의 든든한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