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의 의미,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깨닫게 해주셨죠” | news | 2014-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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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 해결사 최금숙 봉사자
“해애 저무운~ 소오양강에~ 황혼이 지며언~”
분명 종이공예 시간인데, 동네잔치라도 난 듯싶다. 박수가 이어지고 으싸으싸 하며 어깨춤이 솟아난다. 세월의 골이 팬 할머니들 얼굴에 희미한 봄꽃이 피어난다. 두 눈은 어느새 예쁜 반달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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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부갈등 해결사, 최금숙 씨의 하루는 봉사로 시작된다. |
이곳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시몬의집’, 노인요양원이다.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여의치 않은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장소다. 강의를 맡은 이는 최금숙(58) 봉사자다. 할머니들은 기억이 분명치 않다. 지난주에도 왔는데, 한참이 걸려서야 기억해낸다.
그러나마나 최금숙 씨는 신이 났다. “어머니, 이거 이렇게 하면 돼요!”라며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로 꼼꼼히 짚어준다. 따라가는 웃음은 기본이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은 법. 다소 시무룩해 있던 할머니들도 조금씩 흥미를 보이다.
웃다가 노래 부르다가 성대모사와 춤까지, 강의는 한 편의 뮤지컬이다. 이러니 흥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할머니 한분 한분의 사연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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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봉사 자체가 한 편의 흥겨운 뮤지컬인 최금숙 씨. |
“어머니 왜요? 아~ 어제 오신다던 아드님이 안 와서 그래요? 아이고, 어머니~ 우리 아드님이 어머니 모시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느라고 그랬지요. 바빠서 못 온 아드님 심정이 어떻겠어요. 아드님이 원래 효자죠?거봐요!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분명히 며칠 내로 올 거예요. 그렇죠? 서운해하지 않으실 거죠?”
고개를 끄덕인다. 사그라지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돈다.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 아들에 대한 서운함은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단순히 재능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마음을 매만져준다.
봉사자 최금숙 씨의 다재다능함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풍선아트, 페이스 페인팅, POP, 북 아트, 종이접기·공예, 클레이 아트, 쿠키 공예, 골판지 공예는 물론 네일아트까지, 못하는 게 무언가 궁금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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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 한분 한분의 사연에 귀기울이고 있다. |
하지만 그녀를 진정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고부갈등 해결사’라는 색다른 이름이다. 노인 혹은 주부들에게 재능봉사를 다니지만, 단순히 재능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따뜻한 조언을 해준다. 서로의 오해를 풀고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효행 지도사와 스토리텔링 자격증까지 따 놓은 것.
원래 봉사활동에 열심이던 최금숙 씨가 고부간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치매를 앓다가 4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수발하면서였다.
“생각만 바꾸니 간단하더군요. 3시에 들어간다고 하면 2시 반부터 기다리시거든요. 그러다 5분만 늦어도 서운해하시고. 아예 4시까지 간다고 하고 3시 반쯤 들어가니 기뻐하시더라고요. 간단한 걸 가지고 고민했단 걸 깨우친 거죠. 그런 작은 부분부터 깊은 이야기까지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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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도중 흥겨운 노래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
고부갈등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과거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오는 사회적 문제인 것. 그래서 최금숙 씨는 노인들은 물론 젊은 주부들을 대상으로도 많은 강연을 연다. 덕분에 깊은 갈등이 해소됐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맏이가 아니다. 당연히 어머니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다음 해 봄까지 계시는 정도였다고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예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누군가 한 명이 품고 책임을 진다면 집안이 조용해지지 않을까, 고집 피우지 말자. 그러다 치매가 왔죠. 그 때도 남편에게 요양원에 보내지 말고 우리가 모시자고 했어요. 친인척이 도움주면 고맙고, 그렇지 못 해도 원망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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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에게 최금숙 씨는 딸이자 며느리다. |
그렇게 4년을 모셨다. 말이 쉽지, 아무 곳이고 가리지 않고 볼 일을 보는 노인을 돌본다는 건 상상 이상의 인내가 필요한 일. 그전부터 해오던 그녀의 봉사활동도 덕분에 올스톱이 걸렸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며 봉사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단순한 재능이 아닌 마음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에, 시어머니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종이공예가 끝난 뒤에는 아래층으로 자리를 옮겨 낮 시간 동안 보호를 받는 노인들에게 풍선아트를 가르친다. 잠시 낮아졌던 목소리가 다시 신명나게 올라간다.
“어머니, 아파서 짐이 되니까 미안하다고요? 아픈 게 행복이에요. 그간 자식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이제 아프니까 신경 써주고, 보답 받는 거예요. 미안이 아니라 행복이에요.”
시몬의집 이상훈 팀장은 “최금숙 씨는 재료비로 드린 돈도 아껴 노인들에게 드릴 떡과 음료를 사오는 분”이라며 “참 봉사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인물”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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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바쁜 최금숙 씨. 젊은 엄마들을 대상으로 가정의 평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오후엔 파주시 청소년 문화의집으로 자리를 옮겨 젊은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펼친다. 아이의 심성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고부갈등 해결부터 해야한다는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다음 시간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방울 놀이를 시켜줄 차례이다. 그녀의 봉사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 세대를 아우른다. 하루해가 너무 짧다.
“외롭고, 아프고, 자녀와 소통이 안 돼 힘겨워하는 어르신들께 보탬이 됐으면 더 바랄 게 없지요. 물론 어른들만 힘든 건 아니에요. 청소년 상담을 나가보면 아이들도 고민이 많답니다. 그런 모두에게 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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