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남몰래 교문옆에 ‘빨간 도시락 가방’ 놓고가는 김은영 주부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보안관실 앞에는 매일 아침 빨간 가방 하나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배달된다. 이 가방은 이 학교에 다니는 한 4학년 여학생을 위해 한 학부모가 정성을 담아 만든 아침 도시락이다. 25일 오전에도 어김없이 계란말이, 동그랑땡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이 따뜻한 보온통에 담긴 도시락이 돌봄교실 선생님을 통해 A 양에게 전달됐다. 거의 영양실조 상태였던 A 양은 보기좋게 살도 오르고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A 양과 올해 중학생이 된 이 학교 졸업생 언니 B양은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해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 손에 크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가 출근하는 시간에 학교에 데려다주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등교해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부족한 용돈으로 아침밥을 사먹을 수 없어 음료수 하나를 자매가 나눠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영양이 부족해 두 자매는 또래보다 키가 작았고, 특히 B 양은 지나치게 몸이 말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의 수입이 적어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할 정도였고, 두 자매는 감기를 달고 살다시피하면서도 병원에 가는 것은 꿈도 못꿨다. 자매는 하교 후에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집 근처 동네를 배회하며 지냈다.

지난해 A 양과 같은 반인 딸을 통해 이 같은 사연을 알게 된 김은영(여·41) 씨는 지난해 3월부터 매일 아침 자매를 위한 2개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알려질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던 김 씨는 어렵게 입을 떼면서 “아이들의 저녁도 챙겨주고 싶은데, 저녁 도시락은 음식이 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학교 급식 한끼로 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면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찾은 방법이 아침밥 챙겨주기였다”고 말했다.

올해 A 양은 김 씨의 딸과 다른 반이 됐다. 그러나 그의 빨간 가방은 여전히 매일 배달되고 있다. 다만 B 양은 중학교로 진학해 김 씨가 도시락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 자매는 지금까지도 김 씨가 도시락을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김 씨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학교측에 부탁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그래서 김 씨를 ‘빨간가방의 천사’라고 부른다.

지난해 A 양 반의 담임교사는 “올해는 그만두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면서 “아이가 도시락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나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사랑을 베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많은 분들이 주변의 어려운 아이들을 한번 더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