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나만 아는 비밀 여행지 ‘농촌체험마을’] 충청북도 방곡 도깨비마을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와 폭염으로 지쳐가던 7월 말, 우리가족은 여행길에 올랐다, 들떠야할 아이들이 시큰둥하다. 놀이시설이 갖춰진 수영장과 편의시설이 완벽한 대형숙소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농촌체험이라는 이번 여행을 불만스러워했다.

충청북도 단양은 소백산과 월악산 국립공원이 인접해있는 고장답게 산새가 수려하다. 단양 8경 중 5경이라는 기암절벽이 장관인 사인암을 지나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섰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는 우리뿐이다. 계속되는 경사로 자동차의 속도계가 느려지고도 한참을 달린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게 고요하다. 집들도 몇 채 되지 않는다. 해발고도 600미터의 깊은 산골, 단양 대강면 방곡리 도깨비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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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600미터의 깊은 산골인 방곡 도깨비마을

단양의 남쪽에 자리잡은 방곡 도깨비마을은 소백산, 황정산, 수리봉, 신선봉 등의 명산과 곳곳의 계곡, 하천으로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방곡이란 ‘계곡 옆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민간에서 사용하는 막사발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근대에는 쇠락했다가 1994년 수해복구 과정에서 옛 전통을 살려 도예촌으로 조성하게 됐다.

도예생산지답게 흙의 질도 좋지만 금강송과 맞먹는 훌륭한 소나무들이 많다. 궁을 짓거나 임금님의 관을 짤 때 쓰는 황장목을 사용해 도자기를 구워낸다. 도시에서는 공해 문제로 불가능하지만 이곳에서는 장작 가마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해발 350미터에서 700미터 사이에 형성된 마을에 60가구, 140명이 산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들과 이곳의 자연환경에 반해 정착한 젊은이들을 합친 귀농인구가 30%가 넘는다. 40대 이하가 20명 정도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이들도 많다. 대다수의 가구가 도자기를 만들거나 농약이 필요없는 오미자를 생산한다. 살기 힘든 마을에서 지금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이 자랑거리인 청정마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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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이름난 막사발 생산지였던 도깨비마을에서의 도예 체험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산촌마을의 첫 느낌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는데 이곳은 예외였다. 도예체험을 위해 ‘한빛요’라는 도예공방으로 갔다. 공방 입구에 쌓아놓은 소나무 장작과 뒤꼍의 장작 가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을음으로 입구가 새까매진 가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먼저 물레 돌리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고운 흙덩어리를 뚝 떼어 물레에 올려놓으니 5초 만에 작은 밥그릇으로, 미숫가루 타먹기에 알맞은 사발로 변신했다. 이곳서 만든 도자기에 소주를 담아 마시면 특유의 쓴맛이 사라지고 술맛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흙 한 덩어리를 주고는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보드라운 흙을 주무르고 밀기도 하며 연필을 담을 통을 만들었다. 그 위에 꽃과 학 등의 문양을 찍고 흙을 주무르고 만들어 붙여가며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느라 아이들은 말이 없어졌다. 완성한 작품 바닥에 이름을 쓰고는 공방에 두고 나왔다. 간단한 연필꽂이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다 같다고 한다. 900도로 초벌구이하고 유약을 발라 1,250도 이상으로 재벌구이한 뒤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 배달될 날이 기다려진다. 연필꽂이에 소주를 따라 마셔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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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서한기 씨는 방곡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도깨비마을에는 서한기 씨 같은 장인들이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도자기를 생산한다.

염색체험을 위해 다음 장소로 옮겼다. 마을주민들이 직접 만든 체험장이라고 했다. 동네 이장님이 만드셨다는 나무로 만든 야외 개수대, 도깨비마을서 볼 수 있는 설명을 곁들인 식물사진 등, 소박하지만 공들여 꾸민 공간을 보니 동네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항균, 항습, 항염 효과라는 천연염색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고무줄과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천에 새겨질 무늬를 만들었다. 60도로 데운 쪽물에 담갔다 건져 말간 물에 헹궈냈다.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쪽빛 손수건이 탄생했다. 말이나 글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파란색을 쪽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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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체험. 항균, 항습, 항염 효과라는 천연염색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고무줄과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천에 새겨질 무늬를 만들었다.

오미자 경단도 만들었다. 오미자 우린 물을 찹쌀가루에 살살 부어가며 익반죽하니 예쁜 핑크빛 물이 들었다. 팥을 넣고 동글게 빚어 익힌 후 카스테라 가루에 굴려주었다. 오미자 향이 은은한 경단은 보기에도 먹기에도 예쁜 떡이다. 스스로 만든 떡을 먹으니 아이들이 더 맛있어한다.

가죽공예가인 남편을 만나 도시처자에서 산골 새댁이 된 도깨비마을 박현수 사무장에게 산골살이의 좋은 점을 물었다. “환경이 삶의 모든 방식을 다 바꾼다는 걸 알았어요. 먹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 바뀌었어요. 매인 데 없이 잘 먹고 잘 자니 성격과 함께 외모도 후덕해졌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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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씨 좋은 체험지도 선생님이자, 최연소 새댁인 도깨비마을 사무장 박현수 씨는 산골살이를 통해 삶의 모든 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성격 좋은 체험 선생님과 함께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동네 아이들의 전용 수영장이라는 계곡 구경에 나섰다. 짧은 바지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기온인데도 불구하고 동네 아이들 네 명이 첨벙거리며 신나게 놀고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발만 살짝 담그고는 수영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외가도 친가도 가까운 거리라서 우리 아이들은 시골을 체험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휴가를 가더라도 불편 없이 갖춰진 숙소로만 다녔던 터라 아이들에게 농촌은 그저 차창 밖의 한가로운 풍경 정도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사인암 상류 계곡은 동네 아이들의 전용 수영장이다.

 
체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적막함에 귀가 먹먹하다. 사람을 찌르는 태양빛 대신 산촌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기분 좋은 햇살이 늦도록 머물러 있었다. 소설가 김훈의 표현대로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했다.

동네의 집들은 산속에 띄엄띄엄 숨어있고 두 동 뿐인 펜션에 묶는 가족이라곤 우리밖에 없다. 한낮에도 더운 줄 몰랐는데 밤이 되니 서늘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다. 평소대로라면 각자의 스마트폰을 끼고 휴식을 취했을 텐데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으니 달리 할 일이 없다. 우리는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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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펜션에 묶으면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다.

“엄마, 이 동네에 우리밖에 없는 거 같아요. 옆 숙소에도 아무도 없고.”
“어두워지면 우리 담력훈련 한번 할까? 가위 바위 보에서 진 사람이 혼자 동네 산책하고 돌아오기!”
“꺄악~~깔깔깔”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깔깔거리며 자기가 알고있는 무서운 이야기와 공포영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이어갔다. 먼 옛날 저잣거리서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오다가 도깨비놀음에 걸려 버드나무와 밤새 씨름했다는 할아버지가 아직 살고계신 곳, 순수함이 살아있는 도깨비마을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새벽 3시 30분. 낯선 곳이라서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는 자고있는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반쯤 눈을 뜬 채 하늘을 쳐다본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불빛이 사라진 숲속 하늘의 밤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다. 과학관의 천체투영관에서 본 가상의 밤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떨어지는 별똥별도 두 번이나 목격했다. 목이 아프도록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생생하게 살아 반짝거리는 별들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도깨비마을의 아름다움은 눈과 가슴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최신식 워터 슬라이드도 편의점도 없는 불편함이다. 가을이 되면 대한민국에서 단풍이 최고로 예쁘다는 이곳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찾아가는 길이나 체험, 숙박 등 자세한 사항은 방곡 도깨비마을(http://cafe.naver.com/bg4221576)을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공감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