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로부터 “이렇게 살아라”라는 말씀 듣고 싶어서 찾아뵀다는 인사를 드리자마자 “나, 그런 소리 잘해요”라고 하셨다. 가스 점검원도, 전기 검침원도 할머니의 진심 어린 한마디에 털썩 주저앉기를 여러 번. 저리 해사한 얼굴의 주인공이 걸어온 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험난했던 삶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힘이 돼주고 있다.

“아야, 어쩜 이렇게 힘이 세세요!” 그 소리를 듣고서야 흐뭇하게 기자의 손을 쥐었던 손아귀 힘을 풀었다. 일을 많이 해서 손마디가 휘어졌다지만 그 힘은 청년이 부럽지 않다. 그 손으로 홍계향(81) 할머니는 재테크가 뭔지도 모른 채 흘린 땀만큼 모은 전 재산인 5억5천만원 상당 4층 빌라를 지난 6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성남시에 내놓았다. ‘행복한 유산 기부 성남시 1호’를 기념하는 유산 기부식에서 만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는 ‘늙은이 노망을 가장해’ “재당선돼서 축하합니다. 절대 월급만 가지고 살고, 부정부패는 안 됩니다”라고 큰소리를 치셨단다.

“내가 죽으면 (재산은) 시에서 다 가져가겠지, 이런 마음만 먹고 있었어요. 그러다 마침 동네 종묘상 아줌마랑 그 얘기를 하는데, ‘살아서 해야지요!’라고 하는 거예요. ‘살았을 때도 할 수 있어? 그럼 나 시청 간다’라고 하고 그 길로 시장을 찾아갔어요.”

“시장님 만나야 얘기하지, 그냥은 안 해”라며 극구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용케 사회복지과 직원을 통해 시장을 만나 기부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도 “시장님이 공평하게 잘 쓰겠죠”라고 잘라 말했지만, ‘인간극장’ 같은 데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나서 못 보겠더라며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 뚝 떨굴 것 같은 얼굴이 됐다.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르고

어머니는 45세에 얻은 막내딸을 시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하나로 빈털터리 황해도 출신 청년에게 시집을 보냈다. 식을 올린 다음날부터 스물한 살 새색시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유일한 예단이었던 양단 치마저고리를 되판 돈으로 나일론 양말을 잔뜩 구입해 좌판을 펼쳤다. 그것이 할머니의 첫 노점이었다.

“결혼한다고 그만둔 방직회사 앞길에서 그걸 놓고 파는데… 부끄러운 것도 몰랐어요. 근데 장사는 잘됐어요. 그래서 또 사러 갔더니 도매상 아주머니가 어떻게 젊은 사람이 그리 많이 팔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먹고살고….”

고향을 떠나 상경해 처음 터전을 잡은 곳이 서울에서 집세가 가장 쌌던 공덕동이었다. 물을 쓰려면 공동 수도가 있는 한길까지 나가야 했다. 서울에서 물지게 지는 법을 처음 배웠다. 남편은 용산경찰서 옆에서 대장간을 했고, 할머니는 만리동고개 너머 남대문시장에서 건어물을 떼어와 공덕시장에서 팔았다. 언젠가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고 나서야 서울에서만 열 번이나 이사 다녔다는 걸 알게 됐다. 구로동, 동자동, 효창동, 공항동까지, 할머니 표현대로 ‘천리만리 모두 다녔다’.

“명동 YWCA 파출부도 했어요.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이니까, 제가 일하러 가는 날이면 아랫목에 제 밥그릇을 묻어두는 집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세대 근처에 부자들 사는 동네? 아, 연희동! 한번은 거길 갔는데 식구 다섯 명이 먹고 남긴 밥을 모아 담더니 나더러 먹으래요. 내가 아무리 없어서 자기네 집에 일을 하러 갔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안 먹고 나와서 빵하고 우유 사 먹었어요.”

신촌 만화가게를 거쳐, 드디어 부부는 대한극장 근처 필동에 황해식품이라는 작은 가게를 냈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는 물건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깨끗한 물건만 팔았더니 동네에 있는 다섯 가게 중에 장사가 제일 잘됐다. 덕분에 퇴거신고, 전입신고 도장을 찍어줘야 하는 동네 반장까지 맡았다.

“그런데 1983년이 되니까 동네에 슈퍼(마켓)가 생기더라고. 그전까지 반장집이라고 우리 가게에 와서 사던 동네 아재비들이 슈퍼 가서 사는 걸 보니까 피눈물이 나. 그때 모란장에서 좋은 쌀을 사왔던 기억이 났어요. 리어카를 끌더라도 거기 가서 살아야겠다 싶어서 성남으로 왔어요.”

30여 년 전, 새 출발을 꿈꾸며 지금의 성남시 중원구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따라서 공장에 나가보려 해도 나이가 많다며 할머니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수재민 돕기 쌀 모금을 하던 부녀회장이 “이렇게 쌀을 많이 퍼주는 집은 처음이에요”라며 할머니에게 일을 하고 싶으면 모란예식장 앞에 가보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특유의 야문 손놀림을 뽐냈고, 액자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노란 쇠에 녹이 나오지 말라고 독극물로 세척하는 작업”이라는 설명만 들어도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을지 상상이 돼 순간 입 안이 시큼해졌다.

“다른 건 다 기계화가 됐는데 그건 사람이 해야 했어요. 1986년이면 남자들도 월급 30만원 받기 힘들었는데, 난 50만원을 받았어요. 철야를 하니까 돈 많이 벌었어요. 월급봉투 받을 때면 우리 세척반이 많이 받아간다고 다들 부러워했지요. 그러니 이튿날 새벽 6시까지 근무해도 힘든 줄 몰랐어(웃음).”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중에는 요즘도 길에서 만나면 감사 인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오후 5시면 등교를 해야 하는 산업체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매일 4시 50분이면 “머리도 좀 만지고 공부하러 가라”라며 등을 떠밀었던 홍 할머니의 배려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흥이 나서 일했던 공장이 2년 만에 문을 닫자 할머니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지하철 역사 청소도 하고 공터에서 기른 상추, 배추, 파 등속을 내다 팔았다.

고생의 흔적을 지워낸 해사한 얼굴

할머니가 1층에 살고 있는 4층 빌라는 외관이 깨끗해 12년이 넘은 집 같아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열어놓으니 동네 조붓한 길의 생활 소음이 도란도란 들려왔다. 1983년 성남으로 오면서 할머니는 국유지에 지어진 오래된 집을 20만원이 안 되는 돈을 주고 구입했단다. 방 하나, 부엌 하나, 다락 하나 있는 살림집이 4개가 모여 있는 ㄷ자 모양의 집이었는데, 3개를 세를 주니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그러다 3년쯤 지났을까. 국유지로 불하받는 바람에 진짜 내 집이 됐다. 할머니는 땅값으로 고작 30만원을 치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옆집에서 새로 집을 짓자는데, 우리는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어요. 내가 무슨 목돈으로 이 집을 짓겠어요? ‘영감, 할머니 둘이 작은방 하나만 있으면 됐지. 안 그래요?’ 그랬더니 자기네가 지어서 나중에 빼간다며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집 지을 동안 움막 하나 지어서 살다가, 다 지은 뒤에 왔더니 2, 3, 4층을 8천만원씩에 전세를 줬대요. 그렇게 전세를 주고 나니까 내 집이 아닌 거 같았어요. 그런데 내가 공장 다니고, 채소 팔아 열심히 벌어서 하나씩 사글세로 바꿨어요. 그래서 다 사글세가 됐어요.”

개미처럼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할머니는 “전세를 하나하나 사글세로 바꿨을 때”라고 꼽았다. 이 집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할머니의 생활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모란시장 상인들이 “할머니 덕분에 채소 장사를 하는데도 힘이 나!”라며 가장 기뻐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내가 엉뚱하게 번 거 있나? 똑같이 이런 거 하면서 벌었지!”라고 응수했다.

“공장에서 노란 월급봉투 받아오면,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할마이가 이렇게 많이 벌어왔다’라고 자랑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건 잠깐이고, 돌아가실 때가 돼서는 치매가 와서 사람을 못살게 굴었어. (거실장 위의 도자기를 가리키며) 저것도 나 때리려고 하다가 깨진 거야. 그런데 어찌어찌 맞춰서 이렇게 세워놓은 거고. 옛날엔 화분도 많았는데 그것도 다 깨졌어.”

‘참 고생 안 하고 산 것 같은 얼굴’이라는 말은 과연 칭찬일까. 홍 할머니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캐묻지 않으면, 절대 할머니 스스로는 인터뷰에서 하지 않을 얘기였다. 모란역 근처에서 채소 노점을 하는 할머니를 멀리서 감시하고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단속반이라도 뜨면 할머니를 품어주고, 가게 한쪽에 자리를 내어줬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에 푸른 멍을 달고 살고, 한밤중에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에 이르자 할머니를 복지시설로 모시려는 주변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홍 할머니는 고작 석 달간 서울 송파구의 고시원으로 몸을 피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오전에는 가락동시장에서 쪽파를 다듬어 돈을 벌고, 오후에는 성남 집 근처에 머물렀다. “영감이 어떻게 될까 봐서”였다. 할아버지는 지난해 12월, 지병이 악화돼 병원으로 옮긴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웃들은 이를 두고 그나마 할머니 고생 덜 시키고 떠난 할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입을 모았다.

81 인생의 남은 숙제

워낙 체격이 크고 고집도 세서 한 번 노여움을 내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렸던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신용하는 대상이 ‘복지관’이었다. 할머니의 집과 바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성남푸드뱅크(성남동복지회관)의 안호선 과장은 2008년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참여나눔터라고 어르신들이 스스로 식사를 준비해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밥상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마침 일손이 부족했는데 할머님께서 오셔서 ‘내가 좀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라고 하셨지요.”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는 성남시 3백여 명의 어르신들에게 빵을 전달하는 빵 나눔 봉사에 나서는 등 성남푸드뱅크 관련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참석해 일손을 거들었다.

“나는 자원봉사인지 뭔지 그런 거 잘 몰라요. 그냥 이웃집에서 뭘 하니까 점심 얻어 먹으려고 간 건대….”

“지금은 점심을 안 드려도 하세요”라며 거드는 성남동복지회관 정안진 관장에게 할머니는 슬쩍 눈을 흘기며 웃었다. ‘자원봉사’라는 말은 아직도 머쓱한 모양이다. 60여 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본인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이 ‘봉사’였다. 독도홍보사절단 활동도 하고, 최근에는 성남시 노인일자리 사업인 금연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그중 할머니의 자랑은 사후장기기증 서약. 우연히 병문안을 간 병원에서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전화를 해서 신청을 했다고. 유산 기부 사연 이후 또 한 번 놀란 할머니의 추진력이었다.

“생각하면 바로 해야 해요. 그렇다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난 누구한테 간섭하는 게 싫어요. 60여 년 간섭만 받으면서 살았더니,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가 기증했다는 얘길 듣고 ‘교회에다가 하지! 대학에다가 하지!’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왕 한 거잖아요. 그렇게 딴소리하는 것도 듣기 싫어요. 나와 같은 교인인데도 ‘하나님은 다 내려다보고 아십니다. 어디에 기부하시든 상관없습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정말 좋은 거 있죠? 내 마음은 그거지, 딴것 없어요.”

그럼 앞으로 하시고 싶은 것이 있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잠자는 것처럼 가는 게 제일”이라고 답했다. 4년 전 병마와 싸우던 외동딸을 먼저 보낸 할머니는 93세의 나이에 주무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두고 동네 어른들이 “네 엄마처럼 가야 하는데”라고 입을 모았던 의미를 이제 알겠더라고 했다. 그게 진짜 복이라는 걸. 하지만 이쯤에서 그 질문을 포기할 수 없었다. 홍계향 할머니니까. 질문을 바꿔봤다. 남은 ‘숙제’가 있지는 않으시냐고.

“난 친구 만나는 거! 원래 여름에 만나려고 했는데 올해는 가을에 윤달이 들었으니 그때 오래요. ‘그래,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라고 했지요.”

살면서 좋았다 싶었던 때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소꿉친구와의 추억을 돌아보며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됐다. 늦둥이 막내딸이었던 할머니는 출가한 언니, 오빠를 대신해 어려서부터 가계를 책임졌다. 오륙도가 내다보이는 동산동에서 태종대까지 십 리 길을 걸어가 땔감 중 최고라서 ‘솔갈비’라 불리는 마른 솔잎을 산더미처럼 모아서 이고 오는 길이면 동네 사람들이 “개미허리 부러지겠네” 하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럼 그걸 또 십 리 길을 걸어 영도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듯 솔갈비를 그러모으고 같은 가격에 흥정을 나섰던 그 친구를 만나러 고향에 갈 날만을 할머니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때는 자존심이 있어서 서로 돈 많이 벌어야지, 그것만 알았지 친구와의 우정은 몰랐어요. 요즘은 통화하면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그래도 우리 둘 다 남부끄럽지 않게 사니까 그걸로 만족하자’라고 얘기해요. 이 친구가 있어서 무척 고맙고 좋아요.”

그 친구처럼 물질을 잘했더라면 고향 부산에 남았고, 그럼 헤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했던 유일한 후회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머리만 바닷물에 집어넣으면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함께 웃음으로 휘발돼버렸다. 푸념과 책망 그리고 후회는 할머니의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나는 젊은이들 만나면 내가 살았던 얘기 해주면서 ‘이렇게 살아라’ 하는 얘기를 자꾸 해주고 싶어요. 그런 얘기를 해놓고 나서 ‘노인네 노망인 거 같지?’라고 하면 다들 ‘할머니, 그렇지 않아요’라고 하거든요. 이혼을 하고 싶다는 젊은이에게는 ‘두 사람 중에 더 잘난 사람 없으니 서로 양보하면서 살면 안 되겠느냐’라며 내가 살아온 얘기를 했어요. 그걸 새겨듣고 ‘할머님 말씀대로 부부끼리 절대 싸우지 않고 잘 살게요’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무척 고맙고. 난 내 얘기를 들어주면 정말 고마워요.”

미혼인 사진기자에게도 할머니는 “시집갈 때 너무 높은 데도 가지 말고, 사람 마음을 보고 가야 해요. 나처럼 억지로 갈 필요 없어”라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예의 환한 웃음과 함께.

레이디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