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이번 대회 첫 정식종목 채택…‘휠체어럭비’ 

스포츠를 통한 감동의 물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섰다. 2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은 인천아시안게임의 감동을 이어가기에 충분했다.

이번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는 첫 출전한 북한을 비롯해 41개국 6,000여 명의 선수들이 23개의 종목에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자신과의 싸움, 한계에의 도전이라는 말이 이번 대회기간 내내 피부에 와닿았다. 스포츠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교감을 나누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휠체어럭비 경기가 열린 인천 선학체육관

대회 폐막 이틀 전인 22일, 또 하나의 감동이 인천 선학체육관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치러진 종목은 바로 ‘휠체어럭비’였다. 휠체어럭비 결승전이 벌어진 경기장 관중석에는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학생들은 처음 접한 스포츠여서 그런지 선수들이 워밍업하는 내내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인송중학교에 재학 중인 이세영(14) 군은 “휠체어럭비라는 스포츠를 처음 본다. 럭비라는 스포츠도 생소한데 휠체어럭비라고 하니 더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선수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뭔가 생동감있고 재밌을 것 같다.”며 휠체어럭비에 대한 첫 인상을 들려줬다.

결승전을 치르기 전, 몸을 풀고 있는 양팀 선수들

이번 인천 대회를 기점으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종목인 휠체어럭비. 어떤 운동일까?

휠체어럭비는 경추손상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로서, 1977년 캐나다에서 경추손상 장애인을 위해 핸드볼, 휠체어농구, 아이스하키를 접목시키고 보완해서 만든 운동이다. 이를 통해 심폐지구력 향상, 근력 강화 등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감 상승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성장해가고 있다.

휠체어럭비 경기코트(출처=2014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휠체어럭비는 1996년 제10회 애틀핸타 장애인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지정됐고, 2000년 제11회 시드니 장애인올림픽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2010 베이징대회 때 시범종목으로 선보였고 이번 인천 대회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휠체어럭비는 남녀 혼성으로 팀당 12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경기는 8분씩 4피리어드로 진행되는데, 한 피리어드가 끝나면 몇 분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득점은 공을 소유한 선수가 상대편의 골라인 끝에 설치된 두 개의 콘 사이로 지나가거나 접촉하면 인정된다. 득점하는 선수가 여성이거나 장애 정도가 심한 선수라면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며 추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휠체어럭비 경기 중, 선수가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경기 도중 휠체어 바퀴의 바람이 빠질 정도로 과격한 운동이다.

휠체어럭비는 장애인아시안게임 종목 중 유일하게 휠체어끼리의 접촉을 허용하는 경기다. 이로 인해 선수들간에 강한 충돌이 발생된다. 선수가 넘어지거나 휠체어바퀴에 바람이 빠지는 등의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된다.

선수가 넘어지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코치진이 달려나와 선수를 일으켜준다. 선수들은 경추손상을 입은 장애인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없다. 더욱이 휠체어럭비의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와는 달라서 바로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모습들은 휠체어럭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최연소 휠체어럭비 국가대표로 활약중인 박우철 군

 
휠체어럭비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부터 조명받던 종목이었다. 1999년생으로 지난해부터 15살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박우철(15) 선수가 있어서다. 근육병의 일종인 ‘근위축증’으로 1급 지체장애인 판판정을 받은 박우철 선수는 어린 나이지만 점점 실력이 급성장하며 한국 휠체어럭비의 미래로 주목받아왔다. 

그는 “저는 충돌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것 때문에 휠체어럭비를 하는 것 같아요. 스피드를 내면서 경기를 하면 엄청 재밌어요. 그럴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라며 “세계 최고의 휠체어럭비 선수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올림픽에도 꼭 나가고 싶고 형들을 뛰어넘어 다른 나라에 진출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학생들 사이로 특정선수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도 눈에 띈다

관중석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학생들의 모습

  
이날의 휠체어럭비 결승전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였다. 예선리그에서 4승2패로 조 2위로 진출한 대한민국은 6전 전승으로 조1위로 진출한 일본과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한국은 예선에서 두 차례나 일본에 졌다. 일본대표팀은 세계랭킹 4위로서, 휠체어럭비 아시아 최강이다.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세계랭킹 17위로서,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과의 대결을 맞았다. 금메달 결정전에서 만난 일본과의 세 번째 경기인 만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한 듯 보였다.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국가대표 선수들은 연습 때부터 파이팅 넘친 기합과 함께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학생들도 단체 관람하며 선수들에게 응원과 함성으로 힘을 불어넣었다.  

많은 장애인들도 경기장을 찾았는데 장애인들이 경기를 잘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휠체어럭비 경기를 관람하러 온 인송중학교 학생들

 
인송중학교에 다니는 양지석(14) 군은 “일본과의 경기이기 때문에 무조건 한국이 이겼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아픈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 꼭 이겨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으면 한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일본은 예상대로 한국을 강하게 몰아쳤다. 일본은 이케자키 다이스케가 에이스 역할을 했고 스피드와 파워에서 모두 한 수 위를 증명하며 점수를 따냈다. 한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명호와 박우철을 앞세워 서로간의 패스 플레이를 주고 받으며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갔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양 팀 선수들

1피리어드를 8-15로 마친 대한민국은 2피리어드에서 분전했지만 18-30으로 지고말았다.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관중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 힘을 냈고 점수를 올릴 때마다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세리모니를 유도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일본의 강한 충돌로 한국 선수가 넘어지면 관중들은 마치 자기가 다친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꿋꿋이 다시 일어나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매녀 진심으로 응원했다.

경기는 3피리어드, 4피리어드에서도 많은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40-60으로 패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선수들은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정식 종목으로 처음 치러진 대회에서 첫 은메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인자임을 증명했다.  

휠체어럭비는 팀 스포츠다. 동료의 헌신이 있어야 더 수월한 득점이 가능하다.

 
이번 대회 공·수에서 활약한 국가대표 김수민 선수는 “일본의 벽은 높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며 “럭비공을 잡고 패스할 때 상대 선수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며 어머니께 공을 돌렸다.

경기내내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전나경 씨는 “오늘 경기를 펼쳤던 대한민국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 모두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전에 휠체어럭비팀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이 운동을 체험했던 적이 있어서 이 종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며 “휠체어럭비라는 스포츠가 아직은 좀 생소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학체육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금자 씨는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장애인 선수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장애인이 운동을 통해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까지 큰 고통과 인내를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대회 첫 은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대표팀

장애인스포츠 종목들은 모두 얌전하고 조용해야 한다는 편견을 지워야 할 것이다. 휠체어럭비는 휠체어농구, 핸드볼, 아이스하키 등을 접목시켜 만든 운동인 만큼 어느 종목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격렬한 ‘남자다운’ 스포츠이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들에게 메달 색깔은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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