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골목·통영 동피랑 등 문화가 지역 성장 견인 …‘문화, 삶의 질을 바꾸다’ 콘퍼런스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문화, 이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며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문화의 가치에 대해 제법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문화라는 것이 다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무엇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한민국 곳곳에서 문화가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고 생동하는 어떤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창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문화 현장을 다시금 살펴보고 문화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문화융성으로 가는 하나의 중요한 단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문화융성위원회가 12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문화, 삶의 질을 바꾸다’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해 눈길이 간다. 문화가치 확산을 위해 지역 문화의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지역문화의 발전 방향과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문화융성위원회 문화가치확산전문위원회가 지난 11월 12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개최한 ‘문화, 삶의 질을 바꾸다’란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콘퍼런스는 총 3개의 분과로 나눠 진행됐는데, 특히 제2분과에서는 골목, 전통, 시민공동체, 생활장터, 기업, 생활동호회 등 6가지 분야에서 국내 지역문화 사례 발표가 이뤄졌다. 이들 사례를 통해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 문화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고,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 골목길을 걸으며 성장하는 시민들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대구 근대골목 투어’. 도시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듯한 느낌을 주는 대구 근대골목의 시작은 지도를 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는 100일간 대구 근대골목 곳곳을 걸어 다니며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통해 지도가 지역의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대구 근대골목길 투어가 시작되는데 시민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에게 안내해주는 활동을 했다. 대부분 대구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시민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근대골목길 투어에 참여한 이들은 그런 활동을 새롭게 여기고 공감했으며 현재의 코스가 완성될 수 있도록 생생한 증언을 아끼지 않았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대구 중구 근대골목(사진=공감포토)

시민들은 대구 근대골목이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탄생하는 과정을 목격했고 이를 지지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대구시민의 1%가 투어에 참여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2007년 대구근대골목 디자인 개선 사업의 주민총횔 이어졌으며, 나아가 지자체를 변화시켜 ‘도심재생문화재단’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대구 시민들은 지난 10년의 과정을 통해 도시적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그리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북성로의 재발견’이란 프로젝트로 시민이 직접 근대건축물을 구매해 수리해 거주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대구 시민들에게 문화란 역동적인 삶과도 같은 그 무엇이다.

◆ 문화가 바워놓은 우리 마을

그 개수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엔가 유행처럼 번지더니 이곳저곳에 벽화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100여 개가 족히 넘는 우리나라의 벽화마을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을 한 군데 꼽으라면 어디가 떠오르는가. 필자의 경우에는 통영의 ‘동피랑’이 먼저 생각난다.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

이름이 참 세련돼 보이지만 동피랑은 사실 ‘동쪽에 있는 벼랑’의 사투리이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대가 60대 이상인, 그야말로 슬럼화된 어촌마을이다. 2006년에는 동피랑이 재개발지구로 발표나며 거주하는 주민들이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7년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에서는 주민들이 문화를 피부로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동피랑을 하나의 의제로 선정하게 됐다. 고령화된 주민들이 문화를 향유하고자 언덕 마을을 내려오기는 어려운 현실이었기에 문화를 아예 마을 안으로 끌어들여보자는 시도에서 벽화 그리기가 시작됐다. 즉, 동피랑에 생명 불어넣기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작년 겨울에 동피랑 벽화마을의 소문을 듣고 가족들과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2014년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프로젝트 인증,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 브랜드 대상 수상의 명성답게 많은 인파가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 좋게도 ‘이 마을이 사라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벽화라는 콘셉트가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게 됐고, 의도치 않게 통영의 작은 어촌마을이 관광객들을 대거 유치하는 효과를 거둬들이게 된다. 그러자 동피랑을 허물고 새로 세우기보다는 도시재생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동피랑은 재개발지구에서 주거환경개선지역으로 바뀌게 됐다.

주민들의 고령화로 인해 완전하게 주민 자치로 운영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동피랑에는 생활협동조합도 탄생했고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 또 지역의 젊은 작가가 마을에 유입되며 마을에 활력도 생기고 있다. 동피랑 주민들에게 찾아온 문화는 어느덧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이제 더 이상 생소한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하나의 가치가 된 듯하다.

◆ ‘나’에서 ‘우리’를 생각하게 해준 문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했던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성공모델 중 하나인 수원 못골시장의 이충환 상인회장이 콘퍼런스 사례 발표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발표 시작 전 “오늘 주제가 ‘문화, 삶의 질을 바꾸다’인데,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만 해도 문화가 저의 삶의 질을 바꿔놓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이야기해 청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례 발표 중인 수원 못골시장 이충환 상인회장

문화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시장 상인들에게 그 필요성을 알리는 게 더 어려웠고 그 작업만 해도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못골시장에서는 끝내 상인들을 중심으로 무언가 만들어나가 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라디오 방송, 합창단, 신문발행, 요리교실 등이 시도됐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그동안 상인들 간의 닫혀있던 문을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했고, 상인들 사이 소통의 창구가 만들어지게 됐다.

처음에는 문화를 활용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경제적 이득을 창출해보자는 목적이었지만, 그 의미는 더욱 가치있어졌다. 이충환 회장은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이 생성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믿는다. ‘나’라는 개념에서 ‘우리’라는 개념으로 상인들의 인식이 변화됐기에 못골시장이 예전보다 더 활성화되고 상인들의 삶도 더 나아지게 됐다는 것을.

웃음꽃이 피어나는 못골시장 이야기(사진=문화포털 문화PD 영상화면 中)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의 예와 더불어 이날 논의됐던 전주 한옥마을, 안동 ‘구름에 리조트’, 인천시민예술센터 ‘문화바람’ 등의 사례 발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은 문화가 지역민의 삶 가까이에 찾아왔고, 또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바로 이것이 문화의 가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이런 문화의 가치가 더 많은 지역민들에게 확산되고 공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갖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삶 가까이에서 문화를 느끼고 이를 통해 좀 더 풍요로운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감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