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석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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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귀농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진석정(44, 경북 상주시 화북면)씨.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도시에서 살아 옥수수는 먹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했단다. 1994년도 처음 경북 상주로 귀촌했을 때만 해도 풀과 작물을 구분 못해 토마토가 잡초인 줄 알고 다 뽑아 낼 만큼 농사에는 문외한이었다. 처음 텃밭 농사를 지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고 한다.

귀촌해 농사를 처음 시작할 즈음, 크고 달고 시원한 수박을 심어서 먹고 싶은 생각에 아내에게 수박 모종을 사오라고 했단다. 모종을 사왔지만 모종을 심는 것을 본 적도, 방법을 들은 적도 없어서 어떻게 심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나름대로' 정성 들여 모종을 심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 말라서 죽더란다. 포토만 벗기고 흙이 떨어질세라 땅을 파고 물을 주고 심어주어도 몸살을 하는 것이 어린 모종인데 뿌리에 붙은 흙을 탈탈 떨어내고 뿌리를 깨끗하게 해서 심었으니 그럴 수밖에.

이랬던 그가 지금은 '우렁각시' 귀농인으로 불린다. 올해도 2000평 가까이 농사를 지어서 홀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40가구)을 수소문해서 농산물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 양 또한 굉장하다. 감자 200박스, 옥수수 900개, 고구마 30박스, 무 40자루, 양배추 12kg 5자루, 단호박 20kg, 수박 30개, 당근 5박스, 토란 4박스, 땅콩 20자루, 양파 60자루, 주키니 호박 100여 개, 고추 80근. 여기에다 창고에 보관해 둔 팥 100kg은 빵을 만들어 나누어 줄 계획이란다. 진석정씨를 지난 7일 만났다.

기쁜 마음으로 농사 지으니 하늘이 도와주더라

▲ 마을 사람들께 나누어 줄 수박 수확한 수박을 각 가정에 나누어 주기 위해 박스에 담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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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렁각시' 귀농인으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농사 지은 것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거의 다 나누어 주신다고요. 어떤 계기라도 있었나요?
"2011년경 경북 울진에서 생전 처음 농사를 짓는데 처음엔 300평으로 시작해서 700평으로 늘렸지요. 돈을 마련해 보려고 밭에 야콘을 잔뜩 심었어요. 거름도 많이 하고 온갖 정성을 들여서 가을에 기대를 잔뜩하고 추수를 했는데, "아뿔싸, 이럴 수가~" 야콘은 달리지 않고 야콘 씨만 가득한 거예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요.

설상가상으로 양을 키우면서 양유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양들이 병이 들어서 고생만 하고... 시골 생활은 궁핍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드니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람은 힘들어야 철이 드는가 봅니다. 그런데 도와주고 싶어도 돈도 없고, 농산물도 없고... 그때 마음을 먹었어요. 기회가 되면 어려운 이웃들을 꼭 도와 드려야겠다고요.

그때부터 주말에 짠 양유는 혼자 어렵게 사시는 분들에게 그냥 나누어 드렸어요. 얼마나 좋아하시던지요. 양유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시더라구요. 그 후로 수박도 한 덩이씩 따다 갖다 드리기도 하며 그분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함께 행복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농사지어서 돈 벌려고 하지 말자고, 무조건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 주자'고.

그런데 이듬해부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으로 양배추 농사를 했는데 양배추가 얼마나 잘됐는지. 일반 농가에서는 양배추가 약을 많이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작물이에요. 그런데 저는 농약 한 방울 안 주고 농사를 지었는데도 완전히 대풍인 거예요. 그때 깨닫게 된 거죠. '농사는 심보를 바르게 가져야 잘 되는구나~'. 득도를 한 거지요. ㅎㅎㅎ."

- 평소 농사에 관심이 있었나요?  
"1994년도에 경북 상주로 귀촌해서도 컴퓨터 네트워크 서버 관리 일을 했기 때문에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상주 화북면 장각골에 살다가 자녀 교육 문제로 2011년 경북 울진으로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그때 상주의 같은 마을에 살던 평소 존경하는 석선 선생님께서 "밖으로 돈 벌려고 나가지 말고 안에서 생활을 해결하면서 아이 교육에 주력하면 좋겠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처음 이사 가서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 나가서 돈을 벌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아이를 보고는 결심을 했어요. '이제부터는 무조건 자녀 교육에 힘쓰며 먹고 살아야 겠다'고. 그때부터 양을 사서 키우고 농사를 시작했어요."

- 농사 경험도 별로 없다 하셨는데요, 일반 관행농업도 아니고 유기농으로 심는 것마다 풍작을 이루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렁각시님만의 숨은 노하우라도 있나요?
"노하우요? 그런 거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예쁜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니까 하늘이 도와준다는 걸 경험하게 된 거예요. 제가 농사짓는 일정에 맞추어 신기하리 만큼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더라고요. 모종을 심기만 하면 이상하게 다음 날 꼭 비가 와요.

지난 해 배추 심었던 자리에 밭을 갈지도 않고 거름도 주지 않고 고구마를 그냥 심었는데 동네에서 제일 잘되는 거예요. 제가 한 일이라곤 예초기로 풀을 한 번 쳐준 것밖에 없는데 몇 고랑 안 되는 데서 고구마가 40박스나 나왔어요. 저는 농기구도 없어서 빌려서 농사를 지어요. 일손이 많이 모자랄 땐 동네 분들도 일당을 받지 않고 도와주고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도와주시는 거예요. 일당 줄 돈도 없는데 말이죠.

▲  감자 캐는 일을 도와 주려 나온 마을 주민들이 새참을 먹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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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캘 때도 마을에서 한 가정도 빠짐없이 다 나와서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농사를 지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을 아니까 다 나와서 도와주신 것 같아요. 700평에서 감자가 200박스가 넘게 나왔어요. 감자 농사 지으면 졸여서 먹는 작은 콩 감자가 1/10 정도가 나온다고 해요. 그런데 200박스 중에 2박스만 졸임 감자가 나왔어요. 그리고 얼마나 감자가 크고 좋은지... 180박스를 혼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한 박스씩 나누어 드리고 20박스는 마을 주민들 가정별로 다 나누어 드렸습니다.

감자를 모두 나누어 주고 며칠 후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석선 선생님께서 사람을 시켜서 봉투를 갖다 주셨어요. 봉투 위에는 한문으로 '상(賞)'이라고 찍혀 있고 오백만 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웃들에게 감자 농사를 지어서 다 나누어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특히 여기셔서 농사 자금으로 쓰라고 보내주셨어요. 제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준 200박스를 2만 5천 원씩 쳐서 모두 다 사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 농사의 철학이 있습니까?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심보를 곱게 먹으면 하늘이 다 책임지고 농사를 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만을 위해 농사를 지을 땐 되는 것이 없었지만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니 하늘이 직접 농사를 지어 주시더라고요. 이것이 저의 농사의 철학이자 노하우입니다."

전화 걸어 우시는 어르신... 나누면 행복해집니다

- 농산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셨을 텐데요, 어느 때 가장 행복하셨나요? 그리고 올해 농사 작황은 어떠셨나요?
"올해는 고구마 40박스, 토란 8박스, 땅콩 40자루, 양파 100자루를 수확했어요. 20kg 박스 40개를 구해서 이 농산물을 골고루 넣어서 선물 박스를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냈어요.

▲ 송이피자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은 송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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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박 머핀 빵 소외된 이웃들에게 만들어 선물한 머핀 선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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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려운 분들에게 전해 달라고 아는 분에게 위탁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갔는지도 저는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택배가 왔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선물박스를 받고 너무 좋아서 무엇인가 보답하고 싶으셨던가 봐요. 그런데 보낼 만한 것이 없으니까, 송이 철이 지났는데도 산을 서너 개를 넘어 다니시며 송이를 따서 도토리 가루랑 같이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렵게 딴 송이인 줄도 모르고 우리 식구끼리만 먹기가 아까워서 송이를 넣고 피자를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할머니께 감사드리려 단호박으로 만든 머핀을 만들어 보내드렸더니 그 분도 자기만 먹지 않고 주변 분들과 나누어 드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비를 맞으며 호두나무 밑을 뒤져서 주운 호두를 보내 주셨어요. 어떤 분은 평생 이런 선물은 자식들에게도 못했는데 자기가 받게 됐다고 기뻐 전화를 하셨어요. 심지어 전화하시다가 우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나눠 주는 게 이웃들에게 그렇게 행복을 주고 기쁘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사실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이니까 도와주고 싶어서 한 것뿐이에요. 어쨌든 농사지을 때 힘들었던 것에 비례해 천 배 만 배 행복했습니다.

마음이 더 행복했던 것은 석선 선생님께서 "너무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칭찬해주신 것입니다. 석선 선생님은 저희 동네에서 30여 년 사시면서 어려운 분들을 한결같이 도와주시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어요. 그 분을 따라서 흉내라도 내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니 너무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 빵을 만드신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재능이 다양하시네요.
"틈틈이 빵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을 나누어 주는데요. 빵 만드는 것을 배운 적은 없었구요.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서 한 달 동안 혼자 공부하고 실습을 해 본 것 뿐인데... 빵도 그렇더라고요. 마을 주민들 기쁘게 해주려고 빵을 만들다 보니, 빵을 너무 맛있게 잘 만든다고, 빵을 팔라고 하는 소리까지 듣게 된 거지요. 올 농한기에는 카페에 '사랑의 빵 나누기 코너'를 만들어 볼 계획인데요. 농사가 잘되어 100kg 수확한 팥으로 빵의 속 재료로 사용하려고 하는데 다른 재료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스폰서가 필요하네요." ​

▲  창고에 매달아 놓은 땅콩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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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 수확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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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다 나누어 주면 생활은 무엇으로 하는지요. 아이도 있는데 아내분이 힘들어 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는군요.
"컴퓨터 서버 관리하는 일로 기초적인 생활비는 됩니다. 돈을 벌려고 맘을 먹으면 돈을 벌수도 있어요. 농산물 인터넷 판매로 한 달에 천만 원까지 수익 올린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쪽으로 가기 시작하면 점점 다른 사람을 쳐다볼 수 없게 되더라고요.

요즘도 가끔씩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집사람이 궁하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가끔씩 바가지 긁을 때도 있구요. 그러면 다시 해볼까도 하다가 그렇게 되면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니까 그럴 때마다 맘에서 접고 삽니다. 그렇게 사니까 맘이 편하고, 소박해지고 좋습니다. 어젯밤에도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일 년 동안 농사 짓느라고 힘들었지만 그보다 보람이 더 크고 행복하다고 좋아하는 아내에게 고마웠습니다."

- 특별한 계획은 있으신가요?
"지금처럼 '나누기 위한 농사'를 계속 지을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일에 동참한다면 어려운 사람이 없이 다 같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