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지난 3월 1학년으로 입학한 박희순(73), 한영자(73) 할머니가 국어수업을 받고 있다.2015.4.14/뉴스1 2015.04.14/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고창=뉴스1)

한영자(72) 할머니는 이제 버스를 타고 시장을 다닐 수도 있다. 종전에도 버스를 타긴 했지만 아는 곳을 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한글을 깨우친 이후 노선도를 읽게 돼 어디든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글을 깨우친 것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성과다. 한영자 할머니는 올해 전북 고창 봉암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해 수업을 받고 있다.

한영자 할머니는 7남매 중 맏이로 집안형편 때문에 배움의 시기를 놓쳤다. 학교를 다닐 시기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살림을 도맡으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살면서 배우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조카며느리를 통해 봉암초에 입학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해 처음으로 초등학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입학생 모집 시기를 놓쳐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청강생 자격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만학의 길에 들어섰다.

박희순(72) 할머니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제때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하고 뒤늦게 학교 문턱을 밟게 됐다. 올해 봉암초 신입생이 된 박희순 할머니는 한영자 할머니와 동기이자 같은 반 급우다.

박희순 할머니도 지난해 처음으로 봉암초의 문을 두드렸지만 시기가 늦어 입학을 하지 못했다. 박희순 할머니는 달력으로 숫자를 익히고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면서 1년을 기다린 끝에 올해 정식으로 입학을 하게 됐다.

지난해 봉암초의 문을 두드린 어르신은 총 다섯 분이다. 이 중 한영자 할머니와 박희순 할머니를 제외한 세 분이 그해 입학했다. 하지만 이중 두 분은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일수를 채우지 올해 다시 1학년으로 재입학했다. 2학년으로 진급을 한 어르신은 노순애(72) 할머니가 유일하다.

노순애 할머니가 별 탈 없이 진급을 하기까지 자녀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노순애 할머니는 “공부를 하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힘든 부분도 있다”며 “자식들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시라’고 응원해 줘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 최석진 교장이 교장실에서 뉴스1과 학교 운영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2015.4.14/뉴스1 2015.04.14/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폐교 위기의 학교에서 기회의 학교로 탈바꿈

어르신들이 늦게나마 배움의 길에 들어선 것은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 최석진 교장의 노력 때문이다.

최석진 교장은 “농촌에는 학교를 가보지 못한 어르신들이 많이 있다”며 “그 분들의 못 다 배운 한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부임 첫해에 구상했다”고 말했다.

최 교장은 부임한 2013년 3월1일 봉암초에 부임했다. 그해 봉암초의 학생 수는 33명에 불과했다. 그 동안 동문회의 노력으로 여러 번의 폐교 위기를 넘겼지만 지속적인 인구감소 등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최 교장은 평생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어르신들과 다문화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직접 학교 인근 마을 경로당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에게 입학을 권유했다. 그 결과 현재 어르신 5명과 다문화 여성 2명을 비롯해 학생 수가 총 38명으로 늘었다. 올해 2월 졸업생이 12명인 것을 감안하면 학생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다.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르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지역교육청과 도교육청의 입장은 엇갈렸다. 전례가 없었던 탓이다. 이에 최 교장은 직접 교육부에 어르신들의 입학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봉암초에서 첫 어르신 입학생을 받자 다른 학교에서 문의가 잇따랐다. 그 결과 전북지역 여러 학교에 올해 어르신 신입생들이 대거 입학하게 됐다.

봉암초 표효숙 교감은 이러한 시도를 ‘혁신’이라고 표현했다. 표 교감은 “보통은 건강적인 면과 여러 사정들 때문에 학교에서 어르신들을 받기 꺼려한다”라며 “그 분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누릴 수 없었던 것들을 누릴 수 있게 기회를 드렸다는 면에서 ‘혁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적령기 아동들과 같은 반에 배치돼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받는다. 학습 부족분은 적령기 동급생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방과 후 과제를 통해 해결하기도 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최 교장은 그간의 경험을 활용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체조 대표선수를 지낸 체육 전공교사와 음악 전공교사를 특별히 모셔오기도 했다.

최석진 교장은 “체조를 통해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유연성을 기르고, 음악을 통해 심신건강, 문자해독, 정서치유로 학습효과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2학년에 재학중인 노순애(71) 할머니가 9살 학생들과 함께 방과후 수업을 듣고 있다.2015.4.14/뉴스1 2015.04.14/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어르신들 건강 생각해 보건교사 배치돼야”

최 교장에게는 몇 가지 바람이 있다. 바로 보건교사 배치와 자체급식 실시다.

봉암초에는 보건교사가 없다. 법령 상 보건교사는 18학급 이상 학교에 배치하도록 돼 있으며, 농촌 지역의 경우 18학급 이하라 하더라도 도서 지역 초등학교에는 보건교사가 배치된다.

최 교장은 “어르신들이 고령이다 보니 수업 중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어르신들이 안심하고 수업을 받으실 수 있도록 보건교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교장은 최근 연수를 통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담당 교사 1명이 연수에 참여했지만 봉암초에서는 최 교장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을 담당하는 1, 2학년 담임교사와 교감 등 총 6명이 이번 연수에 참여했다.

또 봉암초에는 급식시설이 없다. 이 때문에 면단위 학교인 인근 부안초등학교에서 급식을 가져와 배식을 한다.

최 교장은 “자체적으로 급식을 해결한다면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맞춤형 급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 후 벚꽃이 만개한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

2015.4.14/뉴스1 2015.04.14/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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