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을지대병원 격리 해제]

메르스 환자 노출됐지만 격리조치 등 빠르게 대처

그 후 추가 환자 발생 안해 "비상 감시체제 유지할 것"

"시아버지·시어머니 뵙고, 여덟 살짜리 아이랑 친정엄마도…."

23일 2주 만의 퇴근 뒤 계획을 꺼내놓던 홍민정(40) 대전 을지대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파트장은 울컥했다. 이날 격리에서 풀린 간호사들의 맏언니 격인 홍 파트장은 "그간 어깨 토닥여준 게 전부인 저를 잘 믿고 따라준 후배 간호사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 을지대병원에선 2주 동안 병원에 감금되다시피 격리된 채 중환자실 환자들을 돌본 간호사 39명 등 의료진 40여명이 모인 가운데, 메르스 격리 해제를 알리는 단출한 행사가 열렸다. 황인택 원장은 격려 인사를 하면서 "그간 고생했습니다. 여러분이 드러나지 않은 영웅"이라고 했다. 지친 간호사들이 빨리 귀가할 수 있게 행사는 단 5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대전 을지대병원에서 2주 동안 격리된 채 환자를 돌봤던 간호사들이 23일 격리가 풀려 퇴근을 앞두고 들뜬 모습이다. 이 병원에는 메르스 확진자가 머물렀지만, 최대 잠복기(2주)가 지나도록 추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의료진과 환자 등에 대한 격리 조치가 해제됐다. /신현종 기자

이 병원에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62세 남성(90번 환자)이 다른 중환자실 환자들에게 41시간 동안 노출됐다. 대규모 메르스 발생이 우려됐다. 하지만 90번 환자가 8일 오후 2시 10분 이 병원 음압실에 격리된 시점부터 2주(최대 잠복기)가 지나도록 추가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을지대병원 측은 "2주 내내 살얼음판이었다"고 했다.

◇20일 밤의 고비

특히 간호사들은 사투(死鬪)를 벌였다. 이 병원 15층 의료진 격리 공간과 4층 중환자실만을 왔다갔다하며 중환자를 돌봤다. "하루에 8시간 가까이 방호복을 입고 있었던 적도 있어요." 간호사들은 마스크에 방호복까지 입어 숨 쉬는 게 힘들어 주저앉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고 했다. 땀이 많이 나 탈수 증세를 보이는 건 예사였고, 소화가 안 돼 설사하고 두통에 구토 증세까지 보인 간호사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밤에는 울음바다가 됐다. 주부 간호사들이 자녀들과 영상 통화 하면서 울먹이면, 다른 간호사가 하나둘 따라 울었다.

의사들도 초긴장 상태였다. 원래 위독한 환자들이 모인 중환자실이 격리되다 보니,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수술한 것도 세 차례다. 특히 지난 12일 새벽에는 뇌출혈 환자 긴급 수술에 진땀을 흘렸다. 피부와 두개골을 최소한으로 절제하는 정교한 수술이었다. 집도의는 "땀을 잔뜩 흘렸다는 사실은 수술이 끝나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밤엔 중대 고비가 찾아왔다. 격리된 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 열이 난 것이다. 체온이 37.8도까지 올랐다. "으슬으슬 춥다"고 하는 간호사의 말에, 다른 간호사들 표정이 일순 굳었다. 병원 측은 이 간호사를 즉시 격리실에 입원시켰고, 검체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격리 기간에 총 21명(환자 13명, 직원 8명)이 의심 증세를 보였고,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났다. 이 병원은 보건 당국과 협의해 22일 자정을 기해 자가 격리자(210명), 병원 내 격리자(102명) 등 모두 312명에 대한 격리를 해제했다.

◇성공 비결

이 병원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방어해낸 비결은 빠르고 철저한 대처였다. △의심 환자가 양성 판정을 받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격리 조치를 하는 등 초기 대응이 빨랐고 △'방역 그물망'도 확대해 병원 시설과 기구를 매일 소독하고, 1500여명 전 직원에 대해 발열 모니터링도 했다. 무엇보다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이탈하지 않고 전 직원이 잘 버텨준 게 성공 비결이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격리된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병원 영양과에선 특별 도시락을 만들어 올려보냈고, 직원들은 격리된 간호사들 방 문앞에 영양제 한두통씩을 놓았다. 다른 병원 간호사들, 환자들, 이름 모를 시민들까지 "힘내시라"며 손 편지를 보냈다.

을지대병원 측은 격리 해제는 풀렸지만, 잠복기(2주) 이후에도 만에 하나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비상 감시 체제는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메디힐병원 역시 22일 자정을 기해 격리가 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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