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간병기를 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어머니가 구순이 되시면 내가 67세가 된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늙어가는 방식과 뒷바라지 방식이 있다. 어머니가 인간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어머니에게 책 뒤표지에 실린 글을 읽어드렸더니 ‘뭐하러 이런 걸 썼냐’고 힐난하듯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너한테 짐만 된다’ 하시면서요. 하지만 지금쯤 저 몰래 읽고 계실 거예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홀로 모시며 쓴 6년간의 일상을 담은 『나는 어머니와 산다』(어른의시간)의 저자 한기호(57)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책이 나온 후 어머니의 반응을 이같이 전했다. 출판계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해온 저자는 많은 언론 매체에 논쟁적인 글을 써왔지만 집에서는 매일 아침 어머니를 위해 국을 끓인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어머니 입맛에 맞는 반찬거리를 사다 만들고 매일 식사 수발을 하는 그 일이 쉬울 리 없다.

한 소장은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한 일”이라며 “어머니를 알고 나니 사람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더라. 내게 침묵으로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르쳐주신 큰 스승”이라고 했다.

올해 여든둘인 어머니 박외조씨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치매를 앓게 됐다. 칠십 넘어서도 공장에 다닐 만큼 건강하던 어머니가 퇴행성 관절염 수술 후 한 달 보름간 입원한 후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고 방금전에 한 맏아들과의 전화통화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초기 치매인 어머니를 시골에 내버려둘 수 없어 그가 어머니를 모셔왔다.

평소 우리 사회에서 분단을 제외하고 제1의 문제가 저출산·고령화라고 강조해온 저자는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못하니 스스로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안방에 침대 놓고 간병인 아주머니 쓰면 설마 못하랴 싶었단다. 하지만 『기획회의』 『학교도서관저널』 등 잡지를 한 달에 세 권 발행하고 회사를 두 곳 운영하는 워커홀릭인 그가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다반사다. 지금도 어머니는 밤잠을 자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깨곤 한다. 저승사자가 잡으러 오는 듯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6남매라 짐을 덜 수 있었지만 외동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만혼이 대세니까 ‘노노 부양’이 사회문제가 될 겁니다. 고독사, 무연사(연고가 없는 죽음)도 일본처럼 늘어날 거고요. 일본만 해도 간병기가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치매 부모를 부양하는 사실을 일부러 숨기는 이들도 있다니 화가 나요. 구질구질한 개인사를 공개한 것도 사회문제를 환기하고 싶어서였어요.”

책쟁이답게 책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빗대어 흥미롭게 들려준다. 알코올중독을 앓는 동생부터 이혼 후 홀로 두 딸을 키워온 이야기까지 개인사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프랑스의 유명 건축설계회사에서 일하던 큰딸에 이어 조형예술을 공부하러 프랑스 유학을 떠난 막내딸과의 일화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베스트셀러 30년』을 쓰고 연재가 여섯 개나 되던 어떤 해에는 매주 20권씩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했어요.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니 작은딸이 호통을 치더군요. 얘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구나 싶었어요. 어머니가 옆에서 가만히 웃더니 그때부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어요. 전기밥통 조작법을 물으시더니 밥도 하시고요.” 어머니 같은 딸, 딸 같은 어머니다. 요즘은 둘째 동생이 “과부와 홀아비가 정겹게 잘 산다”고 놀리는 말처럼 그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그를 돌보는지 모를 정도로 친구처럼 편안하다.

그는 힘들 때마다 블로그에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의 속내를 듣고 요리 레시피도 알려주고 이것저것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도 블로그에 간병일기를 쓰고 있는 그는 “앞으로는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 소장은 “가족 관계는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손잡아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달라진다. 마음을 잡아주는 게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어머니가 치매 등급 적용을 받아 오후에 아주머니가 오셔서 대화를 나눠준다. 말벗 친구가 생겼다”며 “어머니가 구순이 되시면 내가 67세가 된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늙어가는 방식과 뒷바라지 방식이 있다. 어머니가 인간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