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전 동구 가오동 대전맹학교에서 송미경 교사가 인체모형을 놓고 안마 이론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대전맹학교 송미경 교사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본인 앞가림은 물론이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한 학생들입니다.”

지난 7일 대전 동구 가오동 대전맹학교에서 만난 송미경(51) 교사는 시각장애인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다. 본인 역시 시각장애인인 송 교사는 맹학교 학생들이 장애를 딛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송 교사의 맹학교에서는 선천적인 시각장애가 아닌 사고와 병으로 갑작스럽게 실명한 장애인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맹학교에 입학해 점자를 익히고 안마를 배운다. 그는 “중도에 실명해 맹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거나 가족과 갈등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 맹학교에 입학해 안마를 배우려다 안마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장애를 얻고 아내나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송 교사는 실명으로 이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감싸주며 사회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도록 돕고 있다. 그는 장애를 이겨내고 특수교사가 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송 교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 1980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뒤 충남 공주사대 가정교육과 재학 시절 나머지 눈마저 시력이 약해지면서 결국 교사의 꿈을 접고 자퇴했다. ‘베체트병’이란 희소병 탓이었다. 그는 1986년 완전히 시력을 잃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특수교육, 상담 등을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003년 교원임용고사에 합격, 모교인 대전맹학교에서 고등부 담임교사와 상담교사를 13년째 맡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게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송 교사는 “맹학교에는 입학 후 한 달 이내에 학교를 그만둘지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학기 초에 학생들과 친해져서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맹학교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나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이 맹학교를 졸업하면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졸업생들은 자격증으로 개인 치료실을 개업하거나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안마사업단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안마사로 대기업에 취직한 학생들도 있다.

송 교사의 제자 중에는 입학 초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교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학생들이 많다. 김대훈(가명·48) 씨는 국내의 한 공기업에서 근무하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후 지난 2009년 대전맹학교에 입학했다. 김 씨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 씨가 맹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씨의 동생이 낙상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는 사고까지 발생해 김 씨는 점점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송 교사는 김 씨를 포기하지 않았다. 김 씨가 동생을 병문안 가는 날이면 더듬거리며 김 씨의 지갑을 찾아내 현금을 채워 넣었다. 송 교사는 “대훈 씨가 동생 병문안을 오가는 길에 차비라도 넉넉히 쓰고 따뜻한 밥이라도 사 먹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김 씨는 학교생활에 열성을 보였다.

김 씨는 성공적으로 학교생활을 마치고 졸업 후 개인 치료실을 개업했다. 김 씨는 현재 대전맹학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송 교사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응원에 힘입어 장애를 극복하고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 2004년 송 교사가 지도했던 유경수(가명·28) 씨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학습 능력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던 학생이었다. 유 씨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송 교사는 유 씨의 집안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전에서 유 씨의 고향인 전북 익산까지 갔다. 송 교사는 가정방문을 통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유 씨가 불편한 몸으로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와 어린 여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유 씨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유 씨를 위해 또 쌈짓돈을 털었다. 송 교사는 유 씨가 맹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용돈을 보태준 것은 물론이고 유 씨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자취하는 유 씨를 위해 쌀을 사서 부치기도 했다.

유 씨는 송 교사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치고 안마사로 열심히 살고 있다. 유 씨는 불편한 몸으로도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고 여동생이 대학 공부를 마칠 때까지 학비를 댔다.

송 교사는 이처럼 여러 제자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각장애인들도 교육을 잘 받으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됐다. 그는 자신이 시력을 잃고도 주위의 도움으로 특수교사가 된 것처럼, 대전맹학교 학생들도 주위의 작은 도움만 있으면 사회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