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 89세 이종암 고입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 79세 임양재

이종암씨(왼쪽)와 임양재씨가 검정고시 전문학원 ‘수도학원’ 졸업식 날 학원 교실에서 포즈를 취했다.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공부하기 힘들지 않았냐고? 어휴~ 말도 마. 기억은 잘 안 나지, 눈은 잘 안 보이지, 귀는 잘 안 들리지… 왜 안 힘들어? 칠판에 쓴 3자가 8자로 보이고, 지금 처자가 ‘검정고시’ 하면 내겐 ‘검정고기’로 들려. 비결이 뭐냐고? 반복이야 반복. 기출문제를 풀고 또 푸는 거지. 100점 맞을 때까지.”(이종암)

“공부하느라 코피 터질 뻔했다니까. 숙제가 매일 있는데 수학 문제가 잘 안 풀리는 거야. 계속 풀다 보면 동이 틀 때가 있어. 너무 힘들었는데, 이렇게 한 번에 합격해서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장해. 마흔여덟 살 우리 사위가 나더러 천재래. 하하하.”(임양재)

2015년 상반기 검정고시 고입·대입 최고령 합격생은 둘 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수도학원 출신이다. 89세의 이종암 할아버지(대입)와 79세 임양재 할머니(고입). 두 분을 수도학원 졸업식이 있는 지난 8월 24일에 만났다. 이종암씨는 학원 졸업생 대표로 축사를 했다. 아울러 학원 측으로부터 장학증서도 받았다. 이씨가 이 학원 재단에서 운영하는 남서울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할 경우, 입학금과 1학기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증서였다. 이씨에게 “대학에 다니실 거냐”고 묻자 “대입 검정고시 합격했는데 대학에 왜 못 가?”라며 되묻는다. 이씨는 9월에 시작하는 이 학원 ‘수능 특강반’에 신규등록했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면 그는 90세에 대학 신입생이 된다.

이씨의 ‘최고령’ 타이틀은 처음이 아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공식적인 학력이 무학(無學)인 그는, 87세이던 2013년 말 수도학원 문을 두드린 이후 1년 반 만에 초졸,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한 번에 내리 합격했다. 세 번 모두 최고령 합격이었다. 특히 2014년 4월에 치른 초등학교 과정 검정고시 시험에서 그는 96.66점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이 학원 최명숙 상담실장은 “최고령 합격자 연령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제 70대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했다. 1998년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생은 68세였다. 2000년대 들어 70대로 높아졌고, 2012년에 최복석씨가 81세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면서 화제가 됐다. 그러다 이종암씨가 최고령 합격생 연령을 확 높였다. 이 기록을 깨려면 90대 합격생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종암씨는 14세 대입 검정고시 응시생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무려 75세 차이다. 행동도 말도 빠른 중학생과 한 반에서 공부하다 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이씨는 “색시랑 싸우기도 했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수학 선생님이 30문제를 칠판에 쓰면서 강의하는데, 쓰는 데 바빠서 강의가 머리에 안 들어와. 3분의 2밖에 못 썼는데, 쓰다 보면 강의가 다 끝나 버려. 강의 끝나고 한 색시가 칠판을 지우는 거야. 내가 지우지 말라고 했더니, 수업도 따라오지 못할 거면서 뭣하러 나왔냐고 그래. 그 말을 듣는데 막 속상하더라고. 싸우기도 뭣해서 보따리 싸서 교실을 나왔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안 되겠어. 다시 들어가서 사과했지. ‘아가씨, 미안해. 내 눈이 시원치 않아서 그러니 이해하고 잘 봐 줘’ 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임양재씨는 “쯧쯧”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맞아요 맞아. 젊은이들한테 방해되는 것 같아서 나도 많이 그만두려고 했어요. 이해가 잘 안 되니까 자꾸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거든.”

이종암씨는 소방기구 및 인명구조 장비 제조업체인 이천산업㈜ 대표이사다. 1973년 체인형 소방사다리를 제조하면서 창업해 43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회사 운영하랴, 시험 공부하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 시간을 번다. 이씨가 뒤늦게 졸업장에 집착한 것도 대표이사로서의 이력 때문이다. 회사 운영을 하다 보면 대표이사 학력을 기재할 일이 많아 평생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다 4년 전, 결정적인 계기가 터졌다. “조달청에 가서 서류 작성을 하는데, 대표이사 학력란에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썼더니 조달청 직원이 졸업증서를 첨부하래. 북에서 초등학교를 나와서 서류가 없다고 했더니 직원이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쓴 걸 펜으로 죽죽 긋더니 ‘무학’이라고 쓰는 거야. 뒤에서 그걸 보고 사람들이 막 웃어. 너무 창피했지.”

그 길로 이씨는 졸업장을 속전속결로 딸 수 있는 길을 물색했고, 1년8개월 만에 초중고 졸업장을 모두 딸 수 있는 검정고시 도전을 결정했다. 학원 문을 나와서 의지가 흔들릴까 봐 상담 당일 1년치 학원수강료를 내 버렸다. 한 번의 불합격 없이 시험 응시 족족 합격한 비결에 대해 그는 “그만큼 절박했어.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젊은이라면 내년도 있고 내후년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잖아”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가 회상하는 지난 1년8개월은 ‘자기와의 싸움’ 자체였다. 초등학교 졸업은 했지만, 이씨가 배운 초등학교 과정과 현재 초등 과정은 완전히 내용이 달라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고. 특히 “국어가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내가 국어선생님한테 막 따졌어. ‘국어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렵냐, 선생님들을 위해서 어렵게 낸 거 아니냐’ 하고. 내가 90년 가까이 살아봤더니 세상 사는 데 아무 필요 없는 걸 너무 많이 가르치는 거야. 국어도 그렇고, 수학도 그렇고. 내가 기계설계도 혼자서 다 하는데, 사칙연산만 알면 다 할 수 있어. 집합, 루트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임양재씨가 “쿡쿡쿡” 웃더니 “맞아요. 피타고라스, 근의 공식 이런 거 쳐다보기도 싫어. 세상 사는 데 아무 필요 없는데 왜 배우나 몰라. 우리가 세상을 오래 살아보니까 아는데, 세상 사는 데 꼭 필요한 건 교과서에서 별로 안 가르치더라고. 하하하.”

이종암씨가 받은 장학증서.

임양재씨는 웃음이 많았다.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금색 꽃신을 신은 그는 연신 “하하하” 웃었다. 보는 이도 덩달아 웃게 만드는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임씨에게 고입 검정고시 도전 이유를 묻자 “살아있으니까”라면서 또 웃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데, 무식해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어요. 꼭 중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검정고시 학원 생각이 났어. 인터넷으로 ‘수도학원’ 검색을 하고 전화를 해봤지. 전화로 상담해 보고는 포기했어. 역시 나한테는 무리구나 싶었지. 그런데 조금 후에 이 실장님(최명숙 상담실장)한테 전화가 왔어요. 한번 꼭 오셔서 상담받으시라고. 상담받고 도전의식이 다시 솟구쳤지. 나이 들어서 안 되는 건 없잖아? 내 나이가 어때서?”

임양재씨의 집은 경기도 의정부다. 의정부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학원을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 “학원 수업이 평일 9시~오후 2시예요. 9시 수업을 들으려면 7시 반 전에 집에서 나와야 해. 평생 자유롭게 살다가 그렇게 살려니 진짜 힘들고 바쁘더라고. 학원 다니면서 후회도 많이 했어.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했지? 내가 미쳤지’ 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남편이 밀어줬어요. 자기가 학부형이래. 하하하.” 임씨는 몇 해 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성공한 이력이 있다. 76세이던 2012년에 시인이 됐다. 한국여성문예원과 인연을 맺고 시를 꾸준히 썼고, 이듬해인 2013년엔 시집 ‘내 모습 이대로’를 냈다.

최명숙 상담실장은 두 고령 학생의 공통점으로 “한 번도 ‘안 돼’ ‘못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고, 늘 긍정적”이라고 꼽았다. 두 사람 다 결단력이 빠르고,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밀어붙이는 타입이라고 한다. 나이듦을 속상해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공통점. 두 노학생에게 “아픈 데는 없으시냐”고 묻자 두 사람은 동시에 “왜 없어?”라며 웃었다. 나이 들어 몸 아픈 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혈압과 당뇨약을 복용 중이고, 임씨는 무릎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어딜 가나 실제 나이보다 10세 정도 어리게 본다고 한다. 두 사람의 건강비결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사는 곳도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은 신기하리만치 생활 패턴이 같았다. 저녁 8시쯤 자고 새벽 3~4시에 일어난다고. 또 별도의 운동은 하지 않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몸을 움직인다고 한다. 이종암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윗몸일으키기 10번, 3㎏짜리 아령 10번을 한 후 하루를 여는 것을 평생 건강의 비결로 꼽았다.

89세, 79세 두 학생의 도전은 끝이 아니다. 89세 이종암씨는 90세에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용실을 차릴 계획도 생겼다. 미술을 전공하면서 미용기술을 부전공하겠다고 한다. “내가 손기술이 좋아서 머리를 잘 깎아. 예전에 이발사를 셋이나 두고 이발소도 했어. 파마 기술도 배우면 재밌겠어. 잘할 것 같아. 자신있어. 내가 아주머니들하고 잘 지내거든.” 79세 임양재씨는 시집에 이어 산문집을 내는 게 목표다. “공부를 꾸준히 하니까 글을 쓰는 게 더 쉬워졌어. 어려서부터 매일 일기를 써 왔는데, 기회가 되면 수필집도 내고 싶어.”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종암씨는 “내가 몰랐는데 그걸 잘해. 그걸 88점 맞았어”라며 한동안 머릿속을 뒤적였다. 과목명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그거 있잖아. 에이치투오 나오고 하는 거. 그래! 맞아 맞아 과학!” ‘과학’이라는 일반명사가 생각나지 않아 대명사 투성이 언어로 대화하는 나이. 그래서 그의 도전과 성공이 더 값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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