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도착한 하상숙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88) 할머니가 10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뒤 위안부 생활을 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seephoto@yna.co.kr

정부, '낙상 사고' 중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국내 이송

병원비부터 보호자 생활까지 지원…"원하면 영구 정착 도울 것"

낙상 사고를 당한 중국 거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88) 할머니의 국내 이송은 고향을 그리며 70여년간 끝끝내 한국 국적을 유지한 할머니를 위한 모국의 '마음씀'이라 할 수 있다.

불과 17세의 나이에 힘없는 나라의 국민이었던 이유로 나락으로 던져진 할머니를 늦게나마 고국의 따뜻한 품에서 치료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의 협조를 얻어 하 할머니를 한국으로 이송한 것이다.

정부는 하 할머니의 치료뿐 아니라 본인과 가족이 원할 경우 한국에서의 영구 정착까지 일괄적으로 돕기로 했다.

◇ 힘없는 나라 국민으로 받은 상처, 고국이 치료한다

10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하 할머니가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불과 17세였던 1944년이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일본인 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으로 건너간 뒤 큰 고초를 겪은 할머니는 이듬해 한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하 할머니는 중국인과 결혼해 남편이 데려온 세 딸을 기르며 살았고, 19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막내딸과 함께 지냈다.

인천국제공항 도착한 하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중국에 남은 유일한 한국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 할머니가 10일 오후 치료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구급차로 이동하기 위해 의료진과 승무원들이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낙상사고로 중상을 입은 하 할머니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다. mon@yna.co.kr

하지만 하 할머니는 한시도 고국을 잊은 적이 없었다.

중국 귀화를 거부하며 사실상 국적을 가지지 않은 채 수십년간 생활했다는 점은 하 할머니가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긍지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 할머니는 결국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1999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한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거처를 마련했으나 연고 없이 혼자 살기는 쉽지 않았고, 중국으로 오라는 셋째 딸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2년여 만에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 할머니는 아쉽게 한국을 떠났지만, 이번엔 모국이 할머니를 잊지 않았다.

여가부는 1993년 제정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달 생활안정지원금 126만원을 지원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할머니가 중국 이웃과 다투는 과정에서 2층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자 전례 없는 큰 금액의 치료비를 지원한 데 이어 고국에서의 이송 치료까지 돕게 된 것이다.

하 할머니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매일 200만원가량의 병원비가 들었다.

여가부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병원비를 대기 어려운 하 할머니를 위해 사고 이후 최근까지 4천800만원의 병원비를 지원했다. 여기에 국내 비영리기구(NGO) 단체와 중국 위안부 연구진 등 외부 단체에서 1천200만원을 보탰다.

이달 초에는 중앙대병원과의 협의해 중앙대병원 호흡기 알레르기내과 신종욱·흉부외과 박병준 교수를 현지로 파견했다.

그러던 중 가족들이 평소 고국 땅을 밟아보고 싶어한 할머니의 뜻에 따라 한국에서의 치료를 희망하자, 이들의 의사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해 국내 이송을 결정했다.

10일 오후 1시30분께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온 하 할머니는 이날 오후 5시30분께 중앙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중앙대병원은 하 할머니에 대해 중국에서 받던 항생제 치료 등을 지속하는 한편, 혈액검사 및 정밀검사 등을 시행해 정확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추가로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결정할 예정이다.

◇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최선의 지원' 약속한 정부

정부는 하 할머니에 대해 긴급한 치료는 물론 장기 입원치료, 나아가 한국에서의 영구 정착까지 돕는다는 계획이다.

일단 하 할머니가 중앙대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자비로 부담해야 할 긴급 치료비는 물론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요양병원 등 입원 치료 비용을 지원한다. 이 기간 함께 한국에 머무는 가족의 생활 역시 돕는다.

할머니가 한국에 정착하길 바라면 여생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도록 제반 비용과 시설을 지원한다.

강은희 여가부 장관은 "할머니께서 안전하게 귀국하셔서 다행이다. 할머니가 가슴 깊은 상처를 입고도 한평생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강건하게 살아오신 데 대해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면서 "고국의 따뜻한 품 안에서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하시도록 치료 지원에 성심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관식 권익증진국장은 "하 할머니께서 그동안 중국에 계셔서 주민등록이 말소됐다"면서 "내일 바로 주민등록을 회복하고 국민건강보험도 취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 국장은 이어 "그동안 했던 것처럼 입원기간은 물론 앞으로도 할머니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치료 후 한국에서의 영구 정착을 포함한 거취는 전적으로 하 할머니와 가족의 뜻에 따른다.

하 할머니의 사례가 유례없는 대폭 지원이기는 하지만, 정부는 위안부피해자법에 따라 피해자 전반에 대한 지원도 꾸준히 강화해왔다.

지원금은 1993년 생활안정지원금 매월 15만원, 신규 등록자 특별지원금 1회 500만원으로 시작했고, 이 가운데 특별지원금은 1998년 4천300만원으로 올랐다. 당시 이미 500만원을 받은 피해자에게는 차액이 지급됐다.

또 2001년부터 지원을 시작한 연간 치료비 지출은 그해 9천300만원에서 지난해 2억8천500만원으로 늘었다. 2006년부터 지급한 간병비는 그해 1억6천700만원이 지출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3억원이 나갔다.

현재 기준으로 등록 피해자는 매달 생활안정지원금 126만원, 간병비 평균 105만5천원, 연간 치료비 평균 454만3천원을 받는다. 틀니, 집 개·보수, 이불 등도 지원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지원을 매년 조금씩 늘리고 있다"며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최선의 그리고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