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시계와 살아온 65년. “딴 사람들이 못하는 거 해냈을 때. 그 희열감은 참 말도 못해요. 그런 기분으로 하죠. 지금도 재미있어요. 싫증을 느끼지 않아요. 일에 대해서. 내가 못할 때까지. 하다가 못 하게 생겼을 때 아직은 그렇게는 못 느끼니까요. 뭐 손 떨려서 못한다 이런 것은 약간은 있지만 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오태준

‘노인(老人)-오랜 경험, 깊은 지혜’ 특별전이 30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막했다. 10월2일 ‘노인의 날’에 국립민속박물관이 한 세대와 공동체의 어른인 노인의 참된 의미를 되새긴다.

열정과 사명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어른들이 쓰던 도구 60여점과 인터뷰 영상, 역시 노인이 제작한 노인 주제 영화 7편을 선보인다.

【서울=뉴시스】100년을 이어온, 손님을 위한 정성. “잘 만들어진 양복은 입는 사람이 편한 옷. 아버지가 그랬어요. 네가 양복을 아무리 잘 만들어줘도 입는 손님, 주인이 싫어하면 잘못된 거다. 이거지. 양복이 지구상에 남자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존재하겠죠. 사람의 체형이 다 다르잖아요. 똑같은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고민이 되고 그랬어. 지금도 그렇다니까. 이제 손님이 가봉하고 가시잖아요? 그럼 공장에 내가 수정해서 보내면 손님 찾으러 오는 날이 내일이다. 그럼 오늘 걱정이 되는 거야. 꼭 시험 보고 시험 점수 기다리는 거 같은 거야. 손님이 일단 오셔서 양복을 딱 입어보고 찾아가면 마음이 푹 놓이는 거예요.” 이경주

 농부 임대규(82)옹은 59년간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공책과 달력에 꼼꼼히 적어 방 두 칸에 보관하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농사 일과 가정의 대소사, 올림픽 등 국가의 중요행사를 기록한 ‘4292년(1959) 농사일기’, ‘88 서울 올림픽 기록 달력’, 그리고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시계수리공 오태준(82)옹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100년이 넘은 망치로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데 써왔고 후에 아들에게도 물려지기를 바라는 드라이버, 줏대, 그리고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재단사 이경주(72)씨는 아버지의 가업과 기술을 물려받았다. 손님이 만족할 수 있는 양복을 지으려고 애쓴다. 양복 제작용 자와 채촌계(採寸計), 그리고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인터뷰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서울=뉴시스】62년간의 메(망치)질. “기술이라는 건 한이 없지. 나는 60년을 더 했는데도 완성됐다고 생각지 않아. 나도 지금도 배우는 게 많아. … 나는 일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 하루 종일 나와서 일하다 보면 딴 생각 할 새가 없어. 도끼도 만들어서 자루 탁 껴서 만들고 망치도 만들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 거야. 그런 데서 행복을 찾는 거지. 특별히 행복을 찾을 일이 뭐 있어? 아직은 노인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노인은 노인이지. 만으로 78세면.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지.” 박경원

 대장장이 박경원(79)씨는 62년간 대장간에서 수없이 망치질을 해 왔다. 쇠를 두드리는 받침인 모루, 스스로 만들어 쓰면서 함께 녹슬어가는 망치와 집게, 또 다른 대장장이인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김영인 연구원은 “이처럼 전시장에는 그들이 사용해 온 모루(대장장이), 드라이버(시계수리공), 곡자(재단사) 등 손때 묻은 도구와 달력일기 등의 기록물이 소개되는데 이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해 온 삶의 지혜를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밝혔다.

노인에 의한 전시다.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77)씨를 객원큐레이터(공동)로 초빙, 전시 기획에서 진행에 이르기까지 노인의 생각과 처지를 반영했다. 사진과 영상 일부도 노인이 촬영·편집한 자료를 사용했다. 전시장 영상실에서 노인이 찍은 영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서울=뉴시스】기록은 모두 역사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처음에는 기록을 했는데 기록한 걸 보는 게 더 빠르고 절차가 똑바로 나오니까 항상 야 이거 기록이 좋구나 생각해가지고선 조금씩 기록을 하다 보니 그게 재미가 나더라고. 편리하게 간편하게 그냥 말도 요점만 따가지고서 써놓고. 길게 쓰려면 종이가 한도 없고 이러니까 간단하게 해놓고. 나 혼자만 알아보게 만들어 놓지 뭐. … 기록이라는 건 역사라고 봐요 나는. 인내심 없으면 할 수가 없고 또 표본이 되어야 되니까. 오늘만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니까. 늙는다는 건 역사야 역사. 그것도. 내가 한 과정을 얘기하는 것 하고 똑같은 거지.” 임대규

 박종익(65)씨의 2013 서울노인영화제 우수상 수상작 ‘어머니! 오야!’, 변영희(69)씨의 2014 서울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 ‘우리집 진돌이’ 등 노인의 시선으로 삶을 다룬 작품에서 노인과 노인 문제에 관한 고민이 엿보인다. 노인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 ‘은빛둥지’의 사연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노인들의 계획’(제작 시네마달)에 등장하는 노인의 “죽은 나무에도 꽃이 피었더라고요”라는 말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전시기간 노인으로 이뤄진 밴드의 공연, 시니어 바리스타 커피 시음회 등이 마련된다. 전시장 관리와 전시 설명도 노인이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은 사회적 잣대로만 평가되거나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러나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노인은 오랜 경험으로 축적한 깊은 지혜를 통해 후대에 바른길을 제시해 온 사회의 어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한 듯 하지만 평범한 노인 4명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노인의 사회 참여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다양한 사회 참여 기회 제공은 물론 국립박물관으로서 사회문제에 적극 기여하는 문화기관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노인 작가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같이 가자’(라영수·77), ‘독서 삼매경’(박상묵·69), ‘황혼의 길손’(라영수),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난다’(오서윤·79)

‘노인-오랜 경험, 깊은 지혜’는 11월8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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