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제 목소리 처음 들으시죠” | news | 2014-05-01 |
장애인 의사소통 책임지는 ‘손말이음센터’
대한민국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5,000만 명을 넘어섰다. 1인 1대의 이동전화로 누구나 자유롭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전화통화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청각·언어 장애인들이다. 이들은 전화이용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제한적인 사용만 가능하다.
이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청각·언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2005년 통신중계서비스를 시작해 2008년 원격수화통역서비스를 거쳐 2013년부터 국번 없이 통합번호 ‘107 손말이음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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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의 순우리말인 ‘손말’과 중계를 뜻하는 ‘이음’을 합한 손말이음센터는 청각·언어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통신중계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
손말이음센터가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해 제공하는 통신중계서비스의 범위는 회사업무 통화, 구직 상담, 쇼핑·예약, 각종 문의 및 가족과의 연락까지 다양하다. 컴퓨터로 손말이음센터에 접속하거나 휴대전화 107번호로 연락, 또는 네이트온으로 접속하면 손말이음센터의 통신중계사가 영상중계 및 문자중계로 비장애인과의 통신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준다.
청각장애인 박재현 씨는(청각장애 2급·25세) “비장애인들은 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저희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현장으로 직접 이동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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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중계서비스는 인터넷으로 손말이음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휴대전화 및 유선전화 107번호를 통해 이용 가능하며, 이 때 휴대전화 및 유선전화 요금은 모두 무료이다. |
현재 32명의 통신중계사가 365일 24시간 빈틈없이 교대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7년째 중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애리 씨는 “야간 근무일 때 혼자 있던 산모가 진통이 오는데 구급차를 부를 수 없으니 저희 쪽으로 연락이 왔어요. 구급차를 불러드려서 무사히 병원으로 호송됐는데 후에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을 때 매우 뿌듯하게 느껴졌지요.”라며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버이날을 앞두고는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대신 전해달라는 요청도 늘어난다. 김애리 중계사는 “아버지께 처음으로 전화를 드린 분이셨는데 첫 마디가 ‘아버지, 제 목소리 처음 들으시죠.’였어요. 저도 눈물이 나는 걸 꾹 참고 중계를 해드렸던 기억이 나요.”라며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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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중계를 선택했을 경우, 통신중계사가 영상을 통해 수화로 장애인의 전달사항을 받아 비장애인에게 육성으로 메세지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준다. |
청각장애인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저희 아이에게 전화가 왔어요. 저는 우리아이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 날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전화를 하루에 꼭 한통씩 해 줘서 참 기뻐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통신중계사는 어디까지나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통신 중계를 하기 때문에 장애인을 대신해 쇼핑몰에 상품에 대한 불만사항을 전달하거나 지인들 간에 다투는 감정적인 내용을 담은 통화를 대신할 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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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중계를 선택했을 경우, 통신중계사가 문자로 장애인의 전달사항을 받아 비장애인에게 육성으로 전달해준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의 경우 문장력이 떨어지거나 의사소통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중계사가 이들의 문자를 해석해 상황에 맞게 상대방에게 전달해준다. |
처음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매우 생소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개인의 감정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당연한 자유조차 구속당한 이들에게 손말이음센터의 중계서비스가 매우 기본적인 생활수단임이 느껴졌다.
그러나 현장의 어려움도 존재했다. 강공식 연구원은 “매해 2명 정도씩 중계사가 증원되고 있긴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급여도 일반 사무직에 비해 적은 편이고, 주말근무까지 감수해야 하는 등 중계사 분들의 애로사항이 많아요. 그래서 지원하는 인원도 적은 편이고요. 남다른 봉사정신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라고 어려움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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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트온 중계서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중계사의 선택이 가능하다. 대부분 같은 성의 목소리 전달을 선호하는 장애인들은 병원 상담이나 이성친구, 가족에게 연락할 때 동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하길 희망한다고 한다. |
손말이음센터의 지난해 이용건수는 65만 건, 한 달 평균 5만 건에 이를 만큼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이용자인 장애인들에게는 홍보가 많이 돼있는 서비스이지만 정작 비장애인들이 이 서비스를 잘 몰라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따른다는 점도 문제다.
이윤숙 통신중계센터 팀장은 “안내 전화를 드리면 번호도 107로 뜨고 생소하니까 대부분 보이스피싱으로 오해하세요. 설명을 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하실 때가 많고요. 구직 전화나 주문 전화를 많이 하게 되는데 상대방이 바쁜데 연락했다며 거절하고 그냥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지요.”라고 애로사항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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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손말이음센터에선 32명의 통신중계사들이 24시간 연중무휴로 활동하고 있다. 근무시간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 편이지만 이들은 남다른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
김애리 중계사는 “요즘 통신사 요금고지서에는 손말이음센터 문구가 포함돼 있어요. 그러나 통신사들조차 정작 필요한 업무는 해주지 않으니 문제예요. 가입은 가능하지만 해지는 불가하다며. 그럼 대신 중계사의 신분증을 보내라고 요청하는 경우까지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강공식 연구원은 “107손말이음센터가 요즘은 관공서, 대기업, 운전면허시험장까지 연계돼 운영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 국민들에겐 인식이 저조한 편”이라며 “본인과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라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손말이음센터 직원들은 일반인들에 대한 홍보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요즘 휴대전화 SMS나 영상통화가 일반화돼 장애인들도 그러한 기능을 이용하면 될 것으로 단순히 오해하는 일반인들이 많다. 그러나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장애인들이 이러한 기능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들을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청각·언어 장애인들은 문장 표현력이 떨어지거나 표현에 조사가 없고 어순이 수화어법처럼 단어와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적인 필담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이를 해석하고 상황에 맞게 전달해줄 통신중계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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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윤숙 통신중계센터 팀장, 김애리 통신중계사, 강공식 수석연구원. |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 역시 장애인들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막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이윤숙 팀장은 “자동차 대여를 위해 장애인 대신 사업체에 연락했을 때 ‘장애인이 무슨 운전을 하냐’는 반문이 돌아올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아직도 얼마나 부족한지 느껴지는 단면이다.
김유진(청각장애 2급·20세) 씨는 “새로운 목소리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요즘엔 전화로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운 음식 주문도 할 수 없었는데 손말이음센터를 통해 직접 주문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소박한 행복을 전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 된다. 26만여 명의 청각·언어 장애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고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직접 방문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107’, 이 세 자리 숫자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청각·언어 장애인들의 기본 의·식·주 생활을 보장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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