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해서 기쁘고, 함께 나누어서 행복하고!

우연한 기회에 소중한 인연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이 맘 때입니다. 내가 사는 강화 마니산에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어느 휴일이었습니다. 소풍가기 딱 알맞은 날씨로 기억됩니다.

"여보, 여보! 얼른 옷 챙겨 입어요. 당신도 잘 아는 내 대학원 동기, 송 신부님께서 오늘 야외미사 오셨대요. 점심 같이 하자고 하시네! 당신, 괜찮죠?"

나는 탐탁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이야 좋은데, 낯선 이들과 점심을 같이 하는 게 좀 어색할 것 같아서입니다. 아무튼 나는 아내를 따라 나섰습니다. 내가 성당에 나가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신부님의 인도가 있었기에 뵙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아내보다 나를 더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우리 앞에 음식이 푸짐하게 놓였습니다. 내게 내민 막걸리 잔도 채워졌습니다. 신부님은 아내한테 함께 자리한 사람을 소개하며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기 우리 성당 사목회장님과 그 반려자이시고요, 예쁜 따님이 있지요. 그쪽 아들과 비슷한 또래라 어울릴 것 같은데... 내 중매 한 번 서볼까? 사목회장님, 이댁 아들도 듬직하거든요!"

신부님이 꺼낸 이야기가 생각지도 않게 졸지에 좌중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될 줄이야! 그날 이후 신부님의 적극적인 가교역할로 인륜지대사인 혼사가 이뤄졌습니다. 중매쟁이 신부님은 혼배성사를 인도했습니다. 사람의 귀한 인연은 참 우연찮게 이뤄지나 봅니다.

사돈댁과 화장실은 멀어야 한다?

아들을 결혼시킨 그해 가을, 아내는 나름 좋은 기획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우리 김장거리 많은데, 사돈네랑 함께 김장하면 어때요?"
"사돈댁이랑 김장을? 사돈댁에서 어려워하지 않으실까?"
"사돈네도 어차피 김장할 걸, 우리 할 때 마당 넓은 데서 같이 하면 편하시겠지!"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며느리하고 의논해보라구?"
 

▲  우리 김장배추 밭입니다. 해마다 사돈댁이랑 함께 할 요량으로 넉넉히 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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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댁과 김장을 함께 한다?' 좀 엉뚱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여럿이서 함께 하면 힘들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시끌벅적 축제처럼 일판을 벌이면 사돈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내 의견에 며느리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사부인께서도 쉽게 대답을 내놓지 않았구요.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사부인은 사부인대로 아직 낯선 불편함에다 혹시 폐라도 끼치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깥사돈 생각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사돈지간에도 가까운 이웃처럼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냐고 흔쾌히 동의하였습니다.
 

▲  사돈댁은 강화 특산품인 순무김치를 좋아해서 김장할 때 순무김치도 함께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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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속담에 '화장실과 사돈댁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돈간에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관계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멀다고 느껴지는 사돈지간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까운 친척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돈사이는 자식을 키우고 서로 나눠가진 관계입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이웃처럼, 더 나아가 가족과 같은 돈독한 우의를 나누고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가족의 재탄생과 함께 사돈지간의 관계는 생각보다 어려운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사돈네와 벌이는 김장축제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지난 주말(5일). 올해도 사돈댁과 김장축제를 시끌벅적 열었습니다.

우리는 꽤 넓은 텃밭을 가꿉니다. 만물상을 차리듯 이것저것 많은 작물을 가꿔먹습니다. 가을김장에 필요한 작물은 거의 다 가꿉니다. 배추와 무, 순무뿐만 아니라 양념에 쓸 고추농사도 짓고 파, 갓, 양파 등도 심습니다.

김장은 양가에서 분담하여 준비를 합니다. 사돈댁은 우리 집에 없는 멸치액젓, 새우젓을 비롯하여 마늘, 생강을 빻아 바리바리 싸들고 옵니다. 사부인은 백김치 담그는 데 일가견이 있어 거기에 쓸 재료와 육수를 미리 준비합니다.

바깥사돈도 퇴근하면 마늘 까고, 생강 다듬는데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손이 커서 김장 때 쓸 것은 물론, 우리가 일 년 내내 먹고도 남을 양을 손질해서 가져옵니다.

김장은 하루 전날부터 시작됩니다. 미리 배추를 뽑고, 무, 순무 다듬는 일을 해놔야 합니다. 갓하고, 쪽파도 손질합니다. 아내는 김장할 때만큼은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야무지게 일을 합니다.
 

▲  사돈댁, 우리 집, 아들네가 일년 먹을 김장배추입니다. 절구고 씻는 일이 만만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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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돈댁이랑 여럿이 함께하는 우리 집 김장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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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사부인의 손맛이 들어간 배추소. 두 집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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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함께 배추를 버무립니다. 함께 하는 일이라 힘들어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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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다듬어놓은 김장거리 양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김장배추 절이는 일이 제일 힘듭니다. 오후 늦게, 반가운 얼굴들이 도착했습니다. 아들입니다. 며느리는 새 생명을 잉태하여 내일 온다고 합니다. 둘이 할 때보다 셋이 하니 일의 진도가 빠릅니다.

다음 날, 함께 김장하는 날입니다. 꼭두새벽부터 아내가 나를 깨웁니다.

"사돈네 오기 전에 절군 배추 씻어버립시다. 그래야 일이 수월할 것 같네요."
 

▲  아내는 김장독에 배추김치를 넣어 보관합니다. 김장독 김치는 색다르 맛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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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하지만 밖에 불을 켜니 일을 할 만합니다. 날도 포근합니다. 아침 해가 뜰 무렵 사돈네 식구와 며느리가 도착하였습니다.

아내가 개회사를 하듯 말을 꺼냅니다.

"자! 이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합시다. 힘은 좀 들겠지만, 축제처럼 즐기면서 해보자구요!"

절인 배추와 무, 준비된 맛깔스런 양념으로 김장축제가 시작됩니다. 아내와 사부인의 코치에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백김치 담당인 사부인은 온갖 정성을 들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순무를 버무리고, 배추 김치소를 만들고, 넣느라 부산합니다.

즐거움과 함께 보람이

김장하는 날, 빠지지 않는 게 막걸리파티입니다. 삶은 돼지고기 수육과 빈대떡, 그리고 배추겉절이가 막걸리안주로 제격입니다. 일하다 먹는 술맛이 기가 막힙니다.

오후 햇빛이 잦아들 무렵에야 김장이 끝났습니다. 사돈댁 차에 김치 통을 가득 싣습니다. 우리 몫으로 묻어놓은 항아리에 김치를 꼭꼭 채워 넣습니다. 일 년 먹을 귀한 식량입니다.

모두 씻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서야 모두 허리를 폅니다. 사부인께서 말을 꺼냈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네요. 일도 노는 것처럼 하니 재미있었어요. 김칫거리가 좋아 김치 맛도 좋을 것 같구요!"

김장으로 일 년 농사가 끝난 것 같습니다. 아침 밥상에 아내가 숙성한 백김치를 밥상에 꺼냅니다. 상큼하게 익은 김치냄새가 코끝을 간질입니다.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네! 사부인 손맛이 이런 맛을 내는 구만요!"

김치 맛을 보니 소통해서 기쁘고, 함께 나누어서 보람있는 행복한 김치입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