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내 첫 비영리 장애인 사진관 ‘바라봄’ 나종민 대표

장애인 전문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의 나종민 대표는 “중증장애인이나 영·유아 보호시설의 아동 등 사진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서 “누구에게나 사진 한 장 가질 권리는 있다”고 말했다. 바라봄 사진관 제공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는 ‘마음의 빛’으로 사진을 찍는 색다른 사진관이 있다. 국내 첫 장애인 전용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이다. 비영리 민간단체 ‘바라봄’의 나종민 대표(53)는 이곳에서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이유로 사진관을 찾기 어려웠던 이웃들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다. ‘바라봄’(Bara vom)의 ‘봄’은 ‘마음을 보는 카메라 창’(Viewfinder of Min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 대표는 2011년 12월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에 장애인을 위한 사진관을 처음 열었다. 2014년 사진관을 합정동으로 옮기면서 주식회사였던 바라봄 사진관을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장애인뿐 아니라 소외계층까지 나눔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바라봄은 누구나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최근 새로운 보금자리인 동교동으로 세 번째 이사를 했다. 지난 20일 나 대표를 새 보금자리에서 만났다.

“바라봄의 둥지를 3년 만에 옮기기로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앞서 있던 장소에 장애인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계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새로 마련한 이곳은 접근도 쉽고 공간도 넓지만, 그만큼 임대료가 비싸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바라봄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나 대표는 외국계 정보통신 업체인 하이페리온의 한국지사장을 지내는 등 20여년간 IT업계에서 일했다. 그가 잘나가던 경력을 접고 ‘착한 사진관’을 열기로 한 건 장애아 체육대회에 촬영 봉사를 갔다가 만난 장애아동 어머니의 한마디 때문이다. “가족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 엄두가 나질 않아요, 근처에 사진관이 있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위축되고 편하지 않아서요.”

결국 나 대표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애인 사진관을 열었다. 장애인을 위한 사진관이라고 해서 여느 사진관과 다른 건 없다. 나 대표는 “굳이 말한다면 드나들기 편하도록 1층에 점포를 구했고, 계단을 경사로로 바꿨을 뿐”이라고 했다. 이후 바라봄 사진관은 소외계층까지 범위를 확장했고, 비장애인들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비장애인들은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기부자가 된다. 비장애인이 가족사진을 찍을 때마다 ‘원 플러스 원’ 방식으로 장애인과 소외계층 가족에게 사진촬영권이 기부되는 방식이다.

“사진을 찍는 데 장애·비장애는 문제가 안됩니다. 비장애인들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장애인 중에도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표정 연출을 잘합니다. 결국 장애인이어서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의 차이라는 거예요. 물론 중증장애인들과는 눈을 맞추기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얼굴을 똑바로 할 수 없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나 대표는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눔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한 ‘오로라 프로젝트’다. 그의 뜻에 공감한 미용실 ‘오테르’, 카페 ‘슬로비’가 함께하는 재능 기부 나눔 프로젝트로 매달 장애인 한 가족을 초대해 머리손질과 가족사진 촬영, 저녁 식사까지 ‘선물 같은 하루’를 선사한다.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정장을 저렴하게 빌려주는 사회적기업 ‘열린옷장’과 함께 취업용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열린사진관’, 사회복지단체에 직접 가서 사진을 촬영해주는 ‘사진유랑단’ 등도 진행한다. 이달부터는 책방 ‘북바라봄’도 시작했다. 나 대표는 북바라봄에 대해 “책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장애인 분들이 언제든지 와서 책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누구에게나 열린 ‘동네책방’ 같은 곳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는 것은 서로 교감이 되기 때문이에요.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저도 재미없고 찍히는 사람들도 힘들겠죠.”

바라봄 사진관은 사진기법을 강의하는 ‘바라봄 사진교실’ 등 수익사업도 하고 있다. 그는 “비영리단체라고 해서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하는 시기는 지났다. 바라봄이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바라봄 사진관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살면서 진 빚, 사진의 빛으로 갚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나 대표는 “사진이라는 ‘빛’을 이용하여 사회에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라면서 “비영리 단체를 세운 후 바라봄과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지는 빚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