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아이들 '성장 앨범' 만드는 오지숙·이태훈·최영교씨]

은평·서대문구 4세 미만 원생들, 걸음마 떼는 모습 등 사진에 담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찍어 주고파… 앨범으로 사랑받은 기억 간직하길"

"어! 어! 어! 걷는다, 걷는다, 우와, 걸었다."

70여명의 아이가 지내는 보육원에서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 카메라를 든 오지숙(여·40)씨는 생후 9개월 된 성규가 첫 걸음마를 떼는 장면을 놓칠까 봐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성규는 지난 4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곳에서 살고 있다.

오씨는 보육원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성장 앨범'을 만들어주는 '반짝반짝 사진방' 소속 자원봉사자다. 갓 태어난 성규와 만난 뒤부터 매달 두 번씩 찾아오고 있다. 오씨는 "5남매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우리 여섯째 성규를 만나는 날은 늘 행복하다"고 했다.

보육원 아이들의 성장 앨범을 만들어주는‘반짝반짝 사진방’소속 자원봉사자 오지숙·최영교·이태훈(왼쪽부터)씨가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이태경 기자

반짝반짝 사진방 소속 자원봉사자는 지난해 4월부터 은평구·서대문구 보육원 세 곳을 찾아다니며 4세 미만 67명의 성장 앨범을 만들고 있다. 20대 프로 사진작가부터 정년퇴직한 60대 교사까지 모두 30명이 모였다. 봉사자 1명이 아이 2~3명을 맡아 그들의 한 해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매달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 엄선한 100여장으로 만든 앨범이 이달 말 세상에 나온다. 보육원 아이들이 난생처음 받는 앨범 선물이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 이태훈(38)씨는 천사원에서 지내는 '꽃돌이(정재민·생후 30개월)'와 '꽃순이(조수진·생후 29개월)'가 커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는 자기 손 위에 꽃돌이·꽃순이가 손을 올린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일반 가정이라면 부모님이 찍어 줄 사진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가 아이의 부모"라고 했다.

아이들과 봉사자들의 첫 사진 촬영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봉사자들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사진 찍는 횟수가 늘어나자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어두웠던 건우(3)는 오씨와 자주 만나면서 웃음을 되찾았다. 오씨를 '사진 엄마'라고 부르는 건우는 이제 그를 보면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오씨는 "덕분에 예쁜 사진을 많이 건진다"고 했다.

성장 앨범을 만드는 과정은 봉사자에게도 큰 기쁨이다. 이씨는 "티 없이 맑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며 "일상에 지친 내가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위로받고 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오씨는 "성규에겐 내가 엄마나 다름없죠. 저도 성규를 아들로 생각하고요. 내 자식 사진 찍어주는 것은 기쁜 일이죠"라고 했다.

성장 앨범 만들기를 기획한 사진작가 최영교(46)씨는 은평구 주변 초등학교에 사진 수업을 나갔을 때 만난 보육원 아이들과 가까워진 것을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씨는 "아이들이 사진관에 쭈뼛거리며 들어와 '사진 좀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묻는데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며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정서적 공백을 어렸을 적 사진들로 채워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의 목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매달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다. 최씨는 "아이들이 나중에 시집·장가를 갈 때 배우자와 함께 성장 앨범을 보고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사랑받고 컸구나'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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