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베어베터' 김정호 대표

네이버 창립 멤버서 변신

스톡옵션 대박… 수백억 부자 됐지만

의미있는 일 하고싶었다

210여개 회사에 납품

발달장애인 고용하는 일반 기업 흔치 않아

정부기관, 공기업도 일 맡기기 꺼려하더라

김정호(50)씨는 네이버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네이버본부장과 한게임 대표를 지냈다. 주식만 수백억원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2012년 6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BEAR.BETTER.)'를 차렸다. 이 회사 목표는 돈 버는 게 아니다.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 고용이 목표다. 전체 직원 240명 중 83%인 199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이 만든 명함과 인쇄물, 과자, 꽃, 커피 원두 등이 네이버, 대림산업, 삼일회계법인, CJ그룹, 대웅제약 등 210개 회사에 납품되고 있다. 작년 매출이 45억원에 이른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곰인형 오른쪽)가 발달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이 회사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곰인형 ‘베베’를 안고 있다. 이 회사는 발달장애인 고용이 목표인 회사로, 전 직원의 83%(199명)가 발달장애인이다. / 이태경 기자

김 대표는 "처음에는 오해 많이 받았다"고 했다. "돈 밝히던 사람이 이런 일까지 한다고요. 저는 베어베터에서 월급 한 번 받은 적 없어요. 정치인 되려고 쇼하는 것 아니냐는 욕도 먹었죠. 회사 차린 이유는 발달장애인을 둔 엄마들 때문이었어요. 제 주변에 그런 분이 많거든요. 죄지은 것도 없는데 죄인처럼 살아요. 발달장애인이 취직을 하면 엄마에게 자유가 생기죠.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그 엄마 인생도 바뀌고, 엄마가 바뀌면 가족이 또 바뀌죠. 그런 게 제일 보람 있습니다." 지난달 15일 서울 성수동 베어베터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창립 당시에는 발달장애인이 10명뿐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한 이유가 뭔가요.

"연계고용이라는 제도를 적극 활용했어요. 직원 100명이 넘는 기업은 전 직원의 2.9%를 장애인으로 고용하지 않으면 정부에 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나 우리 회사 같은 장애인표준사업장(장애인 10명 이상 고용)에 일을 맡기면 그 부담금을 감면받을 수 있어요. 이게 연계고용입니다. 일을 맡기는 회사의 매출액 대비 장애인 직원 수에 따라 50%까지 부담금을 덜 낼 수 있어요. 저희는 항상 50%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매출이 느는 만큼 장애인을 더 고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우리 회사에 1억원어치 일을 맡기면 나중에 정부에 낸 부담금 중 50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어요."

―장애인을 돕는다는 뜻으로 거래하는 회사들도 있겠군요.

"전혀요. 장사꾼들은 가격과 품질만 봐요.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게 복사였어요. 복사 기계만 좋은 걸 쓰면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품질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요.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앞에서 조그만 복사 가게를 냈는데, 거래하는 회사에서 '명함도 찍어 달라' '쿠키 만들면 사겠다' '꽃배달도 해달라'고 해서 회사가 커졌습니다."

―직접 영업을 뛰었다고요.

"제가 일했던 회사나 친구, 선후배가 일하는 기업에 가서 도와달라고 했어요. 1만원짜리 제품을 같은 품질에 5000원에 납품하겠다고 하면 지금보다 사업이 더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명함, 화환 같은 게 철저하게 이권이 걸려 있고 영업을 많이 해야 하는 업종이죠.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국회, 대학 중에 장애인 회사에 일을 맡기는 곳이 극히 드물어요."

―최저 임금을 보장한다고요.

"장애인들이 주로 일하는 보호작업장은 복지시설로 구분돼 있어서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한 달 월급이 10만원 안팎인 곳도 꽤 돼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장애인 중 90%는 하루 4시간 일하는데 월 67만원을 받고, 10%는 8시간 일하고 135만원을 받죠."

―연계고용 때문에 일반기업에서 장애인이 일할 기회가 적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발달장애인이 일반기업에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받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발달장애인이 사회성이 부족하고 의사소통에 제한이 많으니까 채용하지 않아요. 신체장애인을 더 선호하죠.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성장하면 일반 회사로 이직합니다. 그런 직원이 20명 정도 됩니다. 최근에 옮긴 한 친구는 과자 사 들고 고맙다고 인사 왔어요."

베어베터 사무실에는 귀여운 곰 인형과 그림이 많다. 발달장애인을 묘사한 이 회사 대표 캐릭터 '베베'다. 작업장도 밝은 색 벽지와 페인트를 썼다. 초등학생처럼 단 음식만 찾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사원식당에서 식단 관리도 해준다. 희망자에 한해 회사 체육관에서 매일 체조를 하고, 인라인, 배드민턴, 축구 등 동아리 활동도 한다.

―발달장애인이 많이 바뀌겠군요.

"우선 밝아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공간 지각 능력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 우리 회사는 발달장애인이 일단 지하철만 탈 수 있으면 채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직원들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물건 배달을 하거든요. 배달 인원만 약 100명 됩니다. 사회성도 좋아져요. 고객에게 인사하는 법 등 매일 예절을 가르치거든요. 보호시설이나 집에서 '나 못해요'만 하던 친구들이 회사 다니면서 '나 잘해요' 이렇게 변합니다. 조장 역할을 하는 친구도 3명 생겼어요."

김 대표의 할아버지는 황해도 개성의 거상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평북 박천 대지주로, 가동학원 이사장이었다. 6·25전쟁 때문에 두 집안이 망했다. 김 대표의 부친은 택시운전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김 대표는 1990년 삼성SDS에 입사해서 9년 동안 일하다 1999년 이해진 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과 함께 네이버를 창업했다. "삼성SDS에서 일하며 9년 동안 모은 돈 1억1000만원을 네이버에 쏟아부었죠. 정말 악착같이 일했어요. 거의 회사에서 살았죠. 그때 네 살 난 아들과 막 태어난 딸 아빠가 되니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밖에 없었죠. 망하면 안 된다는 결사적인 정신이 생겼어요. 그러다 2002년 네이버 주식이 상장했고, 대박을 쳤어요. 아반떼 인생에서 벤츠 인생으로 바뀐 시점이죠."

―돈을 더 벌 수 있었는데 왜 그만뒀나요.

"몸이 더 이상 못 버티겠더라고요. 주식은 척척 올라가서 졸부가 됐고요. 1년 연봉은 직원, 친구들하고 밥 먹고 술 마시는 데 다 쓰고요. 인생의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어요."

―그 뒤 인생관이 바뀌었나요.

"등산하다가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2014년에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 하다가 떨어졌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로프에 걸려서 살았죠. 100m 높이 절벽에서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생각했죠. '아, 이렇게 훅 가는 거구나. 악쓰고 살지 말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자'고요. 인생 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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