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경험 있는 이주여성 39명, 강남성심병원서 출산 의료 통역
"통증 표현 따라 진료도 달라져요"

지난달 5일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응급실. 만삭 중국인 산모 위슐리(23)씨가 구급차에 실려왔다. 위씨는 작년 8월 중국인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이주 여성이다.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위씨는 갑자기 산통을 느꼈다. 위씨와 의사 모두 크게 당황했다. 산통 정도를 정확히 체크해야 하는데, 한국말을 거의 모르는 위씨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시간은 자꾸 흘렀고 위씨의 상태도 점점 위중해져 갔다.

"니에이스마(괜찮아요)?" 다음 날 오전 8시쯤, 진통에 몸부림치던 위씨를 안심시킨 건 '벤토' 박은희(41)씨였다. 벤토는 자원봉사자(Volunteer)와 멘토(Mento)를 합친 말로, 이 병원에서 외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중국에서 귀화한 박씨는 이날 위씨 옆에서 의사와의 소통을 도왔다. 그 덕에 위씨는 아들을 순산했다.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강남성심병원에서 의료통역사‘벤토’인 박은희(오른쪽)씨가 중국인 산모 위슐리씨의 의료 상담을 돕고 있다. /박상훈 기자

한림대강남성심병원이 '벤토'를 도입한 것은 2015년. 서울 대림동 등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과 가까워서 외국인 환자가 많다. 특히 이 병원 전체 산모 중 외국인은 2013년 12.19％, 2015년 19.7％, 2016년 20.2％로 계속 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주 여성은 정확한 의료 통역 없이는 진료가 어렵다. 고심 끝에 병원은 2015년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 박씨와 같은 벤토 39명을 배출했다. 모두 한림대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들에게 4일간 직접 전문 의학 용어 등을 교육받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2교대로 근무하며 이주 여성의 출산 시 응급 상황이나 외래진료를 위한 통역을 제공한다.

벤토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어 실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들 스스로도 모두 출산 경험이 있는 이주 여성이다. "아픈데 말 안 통하는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다. 한국 생활 5년 차 베트남어 벤토 이모(38)씨는 "3~4번 유산을 한 후에 4년 전 첫 아들을 출산했을 때 말이 통하지 않아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했다"며 "다른 이주 여성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벤토 교육을 맡고 있는 손가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쩌릿쩌릿' '지릿지릿' 등 제각각인 나라별 통증 표현에 따라 진료 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벤토들의 정확한 통역이 진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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