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어르신 요양원 방문한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따라가보니

“평소 머리가 새카맣게 된 것 같다가도 책을 읽으면 머리가 다시 환해지는 것 같아. 아주 좋아 계속 읽어줘.”
“입을 아주 크게 벌려서 목소리를 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
“우리 손녀들 오면 이야기할 거야. 책이 아주 재밌네 재밌어.”

지난 9월 26일.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문화 행사가 마련됐다. 어르신들이 지역아동센터나 요양원을 방문해 책을 읽어주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이 이곳을 방문한 것.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사업은 그동안 복지 수혜의 대상이었던 50대 이상 예비 실버 및 실버세대가 문화복지의 재능기부자로 나서 사회적 돌봄이 더욱 절실한 소외계층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이다.

이날 요양원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반응은 얼핏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조금 더 특별하다. 치매질를 앓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활동은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이다.

 
서울특별시립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조경아 사회복지사는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요양원이나 데이케어센터(치매 및 뇌졸중 등 노인성 질환자들을 위한 복지시설)를 방문해서 책을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활동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며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들과 치매환자들도 문화욕구를 느끼기 때문에 이 같은 사업이 꼭 필요하다.”며 사업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은 지난 5월 공개공모 접수를 시작해, 6월 선발 후 관련 소양교육을 실시했고, 지난 7월부터 도움이 필요한 곳에 파견돼 활동해왔다. 국비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도서 12권을 읽어주는 사업으로, 최종 선발된 22명이 2인1조로 교육을 진행한다. 

이날 진행된 책 읽어주기 수업에서는 15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자리를 지켰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수업에서는 간단한 인사와 율동으로 워밍업을 한 뒤, 봉사자들이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듣고,  서로 이야기해보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모인 어르신들은 모두 치매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이었다.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활동은 2인1조로 약 1시간정도 진행됐다.

 
이날의 주제는 ‘나무’였다.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한 어르신은 “나무들은 낮은 곳에 있든 높은 곳에 있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데, 우리 인간들도 어느 자리에 있든 사이 좋게 지낼 필요가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다.

한 어르신은 “나무 이야기 너무 재밌는데 나중에 옆자리에 누워있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들 좀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며 교육이 진행되는 내내 쉴 새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요양원 관리자는 “이곳에 입소한 분들은 경증에서 중증 치매 환자가 대다수라서 기억력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지만 여기 계신 어르신들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건 매한가지”라며 “일반인의 잣대로 바라보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게 바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계시는 거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드리려고 노력중이다.”라고 밝혔다.

치매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서 책을 읽고 난 뒤 다양한 노래, 율동과 같은 활동도 병행하며 교육이 진행된다.

 
이날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한 김성지 씨는 “어느 틈에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 이왕이면 여생을 멋지게 보내고 싶어 자원봉사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며 “젊었을 때 성우가 꿈이었는데 아쉽게도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신 이처럼 좋은 취지의 활동에 재능을 활용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어르신들이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시며 대답도 잘 안해주셨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즐겁게 웃으시고, 손동작도 따라하며, 정확한 발음은 아니라도 대답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다.”며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기억을 오래 가져가지는 못하시더라도 책을 읽어드릴 때마다 순간순간 좋아하시는 게 전해져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송효순 봉사단원도 “처음엔 말씀도 안하시고 무뚝뚝했던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했는데, 이제는 서로 대화도 나누게 됐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다.”며 “장애인이나 치매환자들도 문화욕구를 갖고 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다보면 그 속에서 교훈을 찾고싶어 하시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건 누구나 똑같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한 달 동안 6,500여 건의 다채로운 독서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책을 통해 문화소외계층과의 공감을 끌어내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같은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니 많은 분들의 관심이 더해지길 바란다.

정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