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재단 운영 발달장애인 보호작업장 '파니스'

파니스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빵을 들고 있는 모습 [푸르메재단 제공]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의 한 건물 2층에 있는 작업장. 출근 시간에 맞춰 위생용 모자와 마스크, 작업복을 착용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직업훈련 교사와 함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전날 준비해둔 반죽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원하는 모양을 잡고 밀대로 호두 파이, 아몬드 쿠키, 마들렌 등 다양한 과자를 만드는 손길이 이내 분주해진다.

발달장애인 30명이 일하는 이곳은 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보호작업장이다. 주민들에게는 빵과 쿠키를 만들어 파는 '파니스'(Panis) 베이커리로 알려져 있다.

'파니스'는 '빵', '양식'(糧食)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파니스 안젤리쿠스'(Panis angelicus), 즉 '천사의 양식'('생명의 양식'으로 의역되기도 함)이라는 그리스도교 성가의 제목에도 쓰이는 단어다.

김희정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보호작업장 원장은 22일 파니스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호작업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훈련 과정을 시작한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터"라고 설명했다.

1991년 '성지제과'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이 곳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이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다. 현재는 남성 20명·여성 10명이 빵·쿠키를 만들거나 작업을 돕는다.

현재 10년 이상 근무한 이들이 9명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직무훈련을 마치고 일반 회사에서 일하다 온 경우도 있고,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카페 창업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재료 준비부터 빵 포장까지 모든 작업을 함께 나눠 하다 보니 동료애도 남다르다는 게 김 원장의 얘기다.

처음 작업장에 왔을 때 입을 거의 열지 않던 한 교육생은 동료들과 빵을 만들며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어 나중에는 '질문 왕'이 됐다고 김 원장은 전했다.

파니스의 제과제빵 작업 모습[푸르메재단 제공]

이 곳은 올해로 29년째 작업장을 운영하며 다른 보호작업장의 모범 사례가 됐지만, 여전히 고민은 많다.

무염 버터나 방사 유정란 등 좋은 재료를 고집하다 보니 판매 수익금을 장애인들의 임금·복지 등에 쓰고 나면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다. 김 원장은 "장애인이 만든 음식을 꺼리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빵 하나를 만들어도 정성껏 하려는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최근 파니스 식구들은 낡은 매장 곳곳을 보수하고 장애인들이 더 쾌적하게 훈련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 펀딩에 나섰다.

이달 초 네이버 해피빈에서 시작한 펀딩으로 약 3주 만에 당초 목표액 200만원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모았다. 8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프로젝트 성공을 빌며 입소문을 내 준 결과다.

김 원장은 앞으로 10여일 남은 펀딩 기간에 더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다.

"매장 리모델링과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공사를 끝내 내년에는 꼭 인증을 받을 거예요. 파니스 식구들의 복리후생도 강화하고, 장애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제과점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김 원장은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