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생/ 동국대 회계학과/ 쿠킷 CSO/ 참기름 소믈리에, 전통시장 도슨트, 국립식량과학원 현장명예연구원(현)

소믈리에.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고 서빙하는 ‘와인 전문가’를 말한다. 이희준 씨(31)는 전 세계 유일의 ‘참기름 소믈리에’를 자처한다. 부산 부평깡통시장, 대구 서문시장, 청주 육거리시장 등 전국 각지를 발로 뛰며 발굴한 ‘명품 참기름’을 모아 소개하고 판매한다. 현재 그가 취급하는 참기름 종류만 300여가지. 각양각색 참기름을 손님에게 맛보이고 취향에 맞게 추천해준다. 참기름 한 병의 평균 가격은 약 3만원. 대형마트에서 파는 같은 용량의 일반 참기름보다 10배 가까이 비싸지만 창업한 해에만 6000병 이상 팔렸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참기름 소믈리에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올리브오일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분은 전 세계 1300명도 넘습니다. 참기름도 와인처럼 원산지와 착유 방법 등에 따라 맛과 향, 색깔이 천차만별입니다. 제주도나 전남 신안에서 기른 참깨로 만든 참기름은 맛이 짭조름합니다. 부산 깡통시장 것처럼 맑고 투명한 참기름도 있죠.”

그는 ‘전통시장 덕후’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9년째, 전국 전통시장을 답사한 후 기록으로 남기고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국내 전체 약 1500개 전통시장 중 10번 이상 방문해 기록으로 남긴 곳만 1011개에 달한다.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새 직종도 만들었다. 해외 방송에서 취재를 올 때 국내 전통시장을 소개해주고 해외에서 전통시장을 조성할 때 컨설팅을 하는 직업이다.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名品 참기름 300종 ‘엄선’

그가 참기름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떻게 하면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조사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의 핵심은 방앗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이 방앗간을 중심으로 생겨날 확률이 약 65%, 반대로 한 시장이 사라질 때 방앗간이 마지막으로 남을 확률이 75%나 됐던 것. 전통시장 방앗간을 대표하는 제품인 ‘참기름’을 살려야 시장 전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2016년 서울 구로시장에 ‘청춘주유소’라는 참기름 편집숍을 세웠다. 참기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자칫 사장될 수 있는 참기름 장인들의 레시피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경주 안강시장 참기름은 잔치국수에 딱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그 풍미가 가장 좋습니다. 통영 중앙시장 참기름은 도미와 곁들이면 최고죠. 모두 시장 지역주민들을 취재해서 알아낸 푸드 페어링입니다. 전통시장이 쇠락하면 장인들의 레시피는 물론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져오던 우리 식문화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독자 레시피로 만든 참기름도 있다. 조선 영조가 즐겨 먹던 참기름을 복원·계승한 ‘이희준참기름’이다. 이 씨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사료를 모아 당시 착유법을 재현했다. 느티나무 밑동 가운데를 파서 절구를 만들고 볶지 않은 깨를 찧는 방식으로 기름을 짜낸다. 이 작업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제가 참기름에 미쳐 있는 것처럼, 한 가지 식재료의 기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전국 전통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참기름 외에도 너무 뛰어난 장인들이 많아요. 본인만의 철학과 장인정신을 지닌 각지의 상인들을 모아 ‘이희준 마켓’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경이코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