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시민 조갑식씨, 주말과 휴일마다 청소 봉사 나서
"버린 물건이 사고 원인 될 수도… 계속 '쓰레기 대장'으로 남고 싶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장님 또 나오셨습니까. 항상 감사드립니다." 새해 첫 주말을 맞아 등산객으로 붐빈 지난 5일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남문, 노란색 조끼를 입은 남성이 성문 앞에 서서 등산객들과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다. 환히 웃고 있는 남성의 손에 파란색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남한산성 쓰레기 대장'으로 통하는 조갑식(71)씨다. 33년째 주말과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손으로는 등산용 스틱, 다른 손으로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한다. 오전 10시쯤부터 해 질 녘까지 남한산성을 지키는 그가 하루에 수거하는 쓰레기양은 150L에 달한다.

남한산성 지화문(남문)에서 만난 '쓰레기 대장' 조갑식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눈에 보이는 건 바로 치워야 한다"며 등산용 스틱으로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쓰레기들을 수차례 건져 올렸다. /김영준 기자

조씨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88년. 취미로 등산을 즐기다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가 날 뻔한 모습을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뭐, 저도 담배꽁초도 비닐봉지도 그냥 버리던 평범한 등산객이었죠. 그런데 그걸 보고 쓰레기를 버리는 순간의 작은 행동이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05년엔 '남한산성 환경봉사대'를 조직했다. 2003년 9월 뉴스에서 태풍 매미로 인해 쓸려 내려온 쓰레기로 가득 찬 팔당댐의 모습을 보도했는데, 똑같은 태풍이 휩쓸고 간 일본의 모습을 보도한 뉴스에서는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환경 정화도 조직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친하게 지내던 등산객들을 한두 명씩 모으기 시작했다"며 "100명이 넘던 회원이 지금은 50여 명으로 줄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2013년엔 도로변에서 쓰레기를 줍다 지나는 차에 치여 목 부상을 당했고, 이듬해엔 산길에서 미끄러져 팔이 부러지고 어깨뼈가 탈골됐다. 하지만 "불구가 된 것도 아니고 조금 다쳤다고 그만둘 일이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한 조씨는 "별의별 쓰레기가 다 나온다"며 몇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쓰레기를 줍다 탈영병이 버리고 간 실탄을 발견해 군 당국에 신고한 일이 있었고, 돌무덤 속에서 무당이 버리고 간 여성 속옷을 발견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 경기 성남의 한 고등학교와 협력해 학생들과 함께 환경 정화 활동도 하고 있다. 학생 30~50명이 1년에 10여 차례 참여한다. 조씨는 "등산로 쓰레기를 줍는 경험을 해본 학생들은 어디 가서도 쉽게 쓰레기를 못 버리지 않겠느냐"며 "교육 효과가 있는 만큼 더 많은 학생에게 봉사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복싱 체육관과 헬스클럽 등을 운영하다 2002년 은퇴한 조씨는 현재 성남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 5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면서 쉬는 날에도 '쓰레기 대장'을 자처하는 게 힘이 들진 않을까.

"저는 매주 남한산성에 올 때마다 엄마 품에 들어가는 듯한 편안함을 느껴요. 어머니를 모시는 거라 생각하면 쓰레기 줍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이렇게 등산도 많이 해서 건강에도 문제없으니 오랫동안 '쓰레기 대장'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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