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어려운 예술인 돕기 프로젝트 ‘#오아시스딜리버리’ 주인공들
ㆍ김선아 다큐 감독이 페북에 올린 글에서 시작, SNS서 잔잔한 반향“
ㆍ우린 도움 필요한 사람과 도움 주고 싶은 사람 연결하는 심부름꾼
ㆍ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예술가들 조금만 더 버티고 힘내세요”

김선아 다큐 감독, 남인우 연출가, 홍기원 교수(왼쪽부터)는 “오아시스딜리버리라는 연대의 경험을 통해 예술가들이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와 연결돼 있음을 느끼고, 그것이 예술활동에도 긍정적 에너지로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철훈 선임기자

예기치 못한 변수로 생계에 곤란함을 느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군가가 주머니 속에 10만원을 넣어준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운데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에게 조건 없이 10만원씩을 보내는 ‘#오아시스딜리버리’(오아시스 배달) 캠페인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캠페인을 시작하고 전파 중인 주인공들을 1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스스로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연결시키는 ‘심부름꾼’이라고 칭했다. 시작은 김선아 다큐 감독(51)이 지난달 27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었다.

김 감독은 “통장을 열어보니 이번달 50만원 정도의 여유는 있는 듯 보입니다. 젊은 다큐영화인 다섯 분에게 조건 없이 10만원씩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필요하신 분 있으면 페북을 통해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이후 김 감독의 뜻에 동참하는 작가, 연구자, 연출가들이 나섰다. ‘#오아시스딜리버리’의 만개였다. 김 감독은 “예술가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공적시스템이 있지만, 내가 정말 예술가가 맞는지, 얼마나 힘든지를 증명하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걸 평가받는 게 쉽지 않다”며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들에게 작은 액수이지만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자 시작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연출자인 오준석 감독(44)은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 한 경우다. 오 감독은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불면서 어쩔 수 없이 2주 동안 공연을 쉬고 있는 상황에서 배우와 스태프의 출연료와 밥값 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막막하던 차에, 일면식도 없는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돈을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려운 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됐지만, 울림이 커 감사히 받기로 결심했고, 이 캠페인이 확산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 역시 팀 내 스태프에게 10만원의 정성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예술가들은 기존에도 불안정한 직군에 속했지만, 코로나19 탓에 대다수 공연들이 중단되면서 더 힘겨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김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친구들은 보통 결혼식, 돌잔치 같은 촬영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행사가 모두 취소되면서 당장 수입이 끊겼다”며 “인디 뮤지션이나 극장 개봉이 연기된 영화 관계자 모두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오 감독 역시 “조명을 담당하는 친구들 얘기로는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부터 각종 지역행사가 취소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행사가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도움이 필요한 예술인을 찾아 연결시키는 일은 홍기원 한예종 연극원 교수(52), 남인우 연출가(46)가 나섰다. 홍 교수는 “오아시스처럼 액수에 상관없이 목이라도 축이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면서 “예술이라는 동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빨리빨리 도와주고 서로를 살려보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캠페인은 조직이 없이 뜻있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남 연출가는 “청년 시절 선배가 삼겹살을 사주면 ‘차비도 없는데 고기보다 돈 만원이라도 주지’ 했던 적이 많았다”면서 “비빌 곳 없이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비혼자나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됐거나 인적 네트워크가 약한 여성 예술가들을 찾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내 옆의 누군가가 ‘너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고 힘내’라는 응원을 해주는 것이 오아시스딜리버리의 힘”이라며 “이런 행위가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