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

사회속에서 자립할 수 있게
장애우 작가등 10명과 협업
순수하고 거침없는 그림 매력
재생종이 활용 접이식 거치대로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발달장애인이 그리고 접은 독서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대 발달장애인 A씨는 몽땅한 손가락으로 편평한 종이를 꾹꾹 눌러 접었다. 접기를 서른 번 반복하자 편평했던 종이가 아코디언처럼 주름졌다. A씨는 그 손가락으로 다시 종이를 펼쳐 하나씩 꺾어 나갔다. 노트북 거치대 하나가 완성되는 데는 5분이 채 안 걸렸다. 비숙련 장애인에게는 1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도 남다르다. 서로 다른 크기의 조각을 원색으로 칠한 이 그림은 또 다른 발달장애인의 작품 '피라미드의 미로'다. 이들이 함께 만든 종이는 독서대와 노트북 거치대 등으로 만들어진다. 사탕수수 껍질, 버려진 잡지 등으로 만든 종이를 재료 삼아 발달장애인 손으로 다양한 데스크용품을 만드는 친환경 사회적 기업 '그레이프랩'의 김민양 대표(41)를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이 성년이 된 후 경제활동은커녕 시설을 떠나 갈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러던 중 발달장애인들 그림에서 특이한 점을 봤어요. 색이나 선이 순수하고 거침없었죠. 제가 2017년 혼자 개발해 만들고 있던 독서대 'G스탠드'에 이들의 그림을 얹고 이들이 직접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가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업을 구체화했다. 2018년 3월 법인을 설립하고 복지관과 대안학교 등에서 발달장애인을 스카우트했다. 현재 자폐증, 지적장애 등이 있는 6명의 발달장애인이 이곳에서 종이를 접고, 네 명의 프리랜서 발달장애인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 약 2년간 이들이 만든 독서대와 노트북 거치대는 총 1만대에 달한다.

처음부터 장애인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귀국 후 결혼해 임신을 했지만 임신 7개월에 유산됐다. "의사가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어요. 만에 하나 태어나더라도 장애를 가질 확률이 크다고 했죠. 결국 아이는 태어나지 못했고 힘들어하다가 복지관을 찾아갔어요. 무작정 봉사활동을 했어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위해 종이는 재생종이를 택했다. "버려진 것들을 자원 삼아 재활용하고, 다 쓴 후에도 자연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에요. 사회적으로는 장애인뿐 아니라 이민자 등 소외계층을 포용해 함께 잘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요. 최소한의 자원과 최소한의 기술만 이용하는 게 제 철학이죠."

작가들과의 협업은 카카오에서 일했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그는 카카오가 이모티콘 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을 당시 이말년, 서나래, 강풀 등 유명 웹툰 작가와 협업해 이모티콘을 만들고 작가와 수익을 나누는 사업모델을 기획한 경험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협업 작가를 늘리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10명, 내년에는 50명의 발달장애인 작가를 발굴할 거예요. 거동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도 집에서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좋은 작가를 발굴해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겁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