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근육장애 배씨 ‘찾아가는 검정고시’로 누운 채 재택 시험
최고령 합격 김씨 “학교 다닌다 말도 못했지만 평생의 한 풀어”

배현우씨(왼쪽 사진)와 김금자씨(오른쪽)는 신체적 불편과 많은 나이를 극복하고 올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두 사람 모두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배현우·김금자씨 제공

근육의 기능이 사라져 인공호흡기에 생존을 의지해야 하는 불편함도, 80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생소함도 배움의 열정 앞에서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첫 초·중·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서 배현우씨(37)와 김금자씨(84) 등 4138명이 합격했다고 15일 밝혔다.

2017년 초졸 검정고시, 2018년 중졸 검정고시에 이어 올해 고졸 검정고시까지 합격한 배현우씨는 근육장애로 24시간 호흡기를 단 채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고사장까지 이동하기 어렵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찾아가는 검정고시’를 통해 재택시험을 치렀다. 배씨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어 검정고시를 준비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몸의 제약으로 인해 손을 쓸 수 없다. 그는 “펜을 사용할 수 없어 긴 국어 지문의 중요한 부분을 머릿속에 기억해가며 읽어야 하고, 수학도 손으로 풀 수 없어 암산에 의존해야 하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씨는 근육에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근육이 점점 사라지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9살 때 진단을 받은 뒤 점점 병이 진행돼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 배씨는 현재 서울 도봉구에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생과 함께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이혼한 후 어머니 혼자서 20년 넘게 저와 동생, 장애인 2명을 돌보셨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결국 쓰러지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어머니를 고생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동생과 같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저희 같은 중증장애인은 입소를 꺼리는 시설이 많아 아예 자립을 하고, 지금은 다행히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어요.”

배씨는 5년 전부터 활동가의 길에 나섰다. 중증장애인 삶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함께가자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가능하다면 공부를 지속해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험과 의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춰서 장애인 사회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김금자씨는 이번 검정고시의 최고령 합격자다. “나이 먹어서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에 다니는 게 부끄러워 그동안 주변에 말도 못했다”는 그는 “그래도 평생 공부 못했던 한을 풀게 돼 기분이 진짜 좋다”며 수화기 너머로 수줍게 웃었다.

김씨는 70년 전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오빠와 단 둘이 3·8선을 넘어 피란 왔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없이 오빠와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느라, 결혼해서는 1남3녀를 키우느라 공부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늘 공부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찾지 못해 한이 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양원주부학교를 찾으면서 희망을 갖게 됐다. 김씨는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한문을 배웠는데 어깨너머로 어렸을 때 본 게 있어서인지 6급 시험에 합격하고 아주 기뻤다”며 “그 이후 검정고시가 있다고 해서 도전해보자고 결심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했는데 합격했다”고 말했다.

8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 김씨에게 공부는 최근 삶의 낙이다. 김씨는 “자식들도 엄마 소원 푸셨다고 매우 좋아하고, 무엇보다 몰랐던 걸 알게 되니까 하나하나가 아주 재밌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아직 다리가 성하니까 앞으로 중학교 과정도 열심히 배워볼 생각”이라며 중졸 검정고시 통과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 계획을 밝혔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