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세이버 25개 국내최다 보유
김만선 종로소방서 신교센터 팀장

제세동기 사용 여부 등
기준 까다로워 25개만 인정

구급차 안엔 삶과 죽음 공존
신고자와 약속장소 어긋나
영아환자 못 살려 가장 아쉬워

국내 최고의 하트세이버인 김만선 종로소방서 신교119안전센터 2팀장이 펌프차(구조 소방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한울 기자]

"구급차에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다 있어요. 35명을 살려냈지만, 많은 죽음을 목격했어요.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봤죠."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신교119안전센터에서 만난 김만선 종로소방서 신교119안전센터 2팀장(56)은 수십 년 자신이 탔던 구급차를 이같이 설명했다. 심정지환자 35명을 소생시킨 그는 25개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가진 국내 최고의 하트세이버다. 하트세이버란 소방청이 심정지환자 소생률을 높이기 위해 2008년 도입한 인증 제도로, 심정지 위기에 처한 응급환자를 심폐 소생술로 구한 구급대원 등에게 수여된다.

"실제로는 서른다섯 명의 심정지환자를 살렸는데,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하는 등 심사조건이 까다로워 스물다섯 개만 받았어요. 당시에는 제세동기 보급이 충분하지 않아 오직 손으로만 심폐 소생술을 해서 못 받은 경우가 더러 있었죠." 김 팀장은 1994년에 소방관이 돼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는 등 9년간 구조대원으로 활약했다. 이후 10년의 구급대원을 거쳐 지금은 화재진압부문 팀장을 맡고 있지만, 아직도 그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25개의 하트세이버 배지를 받은 비결이 있을까. 김 팀장은 "세 명이 한 팀이 돼 근무하는데 당시 대원들이 저를 믿고 따라준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 상황을 듣고 의심스러우면 보호자에게 심폐 소생술을 하도록 유도한 후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대원에게 구급용품과 제세동기, 들것 등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저는 무조건 뛰어가서 심폐 소생술을 해요. 심정지는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시간을 벌어야 하죠"라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물었다. 그는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라며 운을 뗐다. "둘레길에서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죠. 비가 오고 길도 미끄러운데 구급대원 세 명이 출동해 환자를 들것에 싣고 내려왔어요. 급히 심폐 소생술을 하고 환자를 병원에 이송했는데 환자가 소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고맙고 감사했죠.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가장 아쉬웠던 기억을 물으니 영아환자 얘기를 꺼냈다. "한 살 미만의 영아환자였어요. 다급한 신고를 받고 재빨리 출동했지만 신고자가 현장에 안 계셨어요. 신고를 하고도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아이를 안고 나간 것 같아요. 신고자와 약속장소가 어긋나 시간이 지연되면서 끝내 못 살렸어요. 그게 정말 아쉬워요." 조심스레 자신의 얘기도 털어놨다. "하트세이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정작 제 가족은 못 살렸어요. 저쪽 방에서 가족이 쓰러진 것을 즉시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시간이 지나간 상태에서 심폐 소생술을 하다 보니 잘 안 됐어요. 소방서 내에서 심폐 소생술을 잘한다는 사람이 왜 내 가족을 못 살렸을까, 너무 아쉽고 슬펐어요."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에게 구급차 안에서의 생과 사에 대해 물었다. "삶과 죽음은 절대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저희는 환자가 삶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죠.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여러 환자를 만나면서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은 해봤어요. 어떤 환자는 10년간 지병을 앓고 나이가 많아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호흡이 돌아왔고, 또 다른 환자는 젊고 지병도 없고 호흡도 있어서 심폐 소생술을 하면 호흡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됐죠."

심폐 소생술로 생명을 살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사람들에게 심폐 소생술을 평상시에 익혀 놓기를 당부했다. "사람들은 심정지가 본인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배워뒀으면 좋겠어요. 쓸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내 가족이나 이웃, 동료를 내 손으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심정지환자에게 얼마나 빨리 처치를 해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과 사가 갈려요. 온 국민이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상시 집 근처 제세동기 위치를 확인해보고, 지나가다 소방서에 들러 연습해보세요. 소방서는 늘 개방돼 있어요."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