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허진이 씨의 `희망 예찬`

대학 입학때까지 보육원 생활
퇴소땐 세상에 던져진듯 막막
낙담만 하기엔 인생 너무 짧아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아름다운재단에서 허진이 씨가 보호종료 후 자신의 자립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권한울 기자]

허진이 씨(25)는 만 19세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5년 전 '보호종료' 결정과 동시에 독립했다. 지금까지 부모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시설 안에 초·중·고등학교가 있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시설 밖 사람들과 만날 일이 없었다. 보육원 안의 삶은 비교적 평온했지만 성인이 되고 마주한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또래 보육원 친구들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간혹 들려왔다. 그렇게 주저앉아도 기억해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이 절망스러웠다. '천애고아'라는 말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낙담만 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아름다운재단의 보호종료 아동 자립 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의 2기 캠페이너로 활동 중인 허씨를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아름다운재단에서 만났다.

"누군가에게서 포기된 삶이지만 모든 삶은 특별해요. 그 특별함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허씨는 보호종료를 앞둔 후배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보호종료 아동은 보육원 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가 돼 시설을 나와야 하는 이를 말한다. 그는 "대학 입학과 졸업, 결혼 등 굵직한 일을 겪으며 스스로 참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보호종료 아동만이 지닌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며 "결혼식도 '우리만의 파티'처럼 즐겁게 치르고 명절에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마음만 조금 달리 먹으면 낙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월 보육원을 나온 자립 6년차 성인이다. 성인이 되면 퇴소해야 한다는 사실도, 대학에 가면 보호 연장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1년간 보호연장 아동으로 지내다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퇴소를 결심했다.

2015년 퇴소했지만 허씨 마음속 자립은 대학 입학을 위해 보육원을 떠나온 2014년 3월이다. 19년간 보육원에서 쓰던 짐은 36인치 여행가방 하나에 다 담겼다. 난생처음 자신의 이름이 적힌 통장도 받았다. 통장에는 정부 자립 정착금 500만원과 후원금 4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가톨릭대학교 기숙사에 들어와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품 쇼핑'이었다. 한 달 용돈 3만원으로 생활하던 보육원에서는 할 수 없던 일이다. 색조화장품을 잔뜩 사고서야 비로소 자립을 실감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막막했다. "좋든 싫든 19년을 주는 대로 먹고 입고 살았는데 친구들과 떨어져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헐벗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지켜야 할 규칙이 없으니 자유로웠고요. 오묘한 기분이었죠." 허씨는 그렇게 회상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명절에는 갈 곳이 없어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부모님이 없다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어른도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보호가 종료된 후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어른'이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이렇게 살면 안 돼, 제 삶을 검열하고 북돋아줄 어른이 있길 원했어요."

그는 같은 보육원 출신 선배와 결혼했다. 자립을 지원하고 조언해주던 선배다. "누군가에게서 포기된 삶이었기 때문에 일이 잘 안 될 때마다 가진 게 없어서, 부모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제 삶에도 별 책임감이 없었죠. 어렸을 때부터 빨리 가정을 이뤄 책임감을 갖고 살고 싶었어요.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대한 장면이 기억에 없었기에 결혼을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2018년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했어요. 저희 부부 모두 보육원에서 자라 모델로 삼을 만한 가정 자체가 없다 보니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에요."

보호종료를 앞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보육원 강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허씨는 "저는 비교적 평탄하게 자립을 했고, 후원자를 만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등 여러 기회를 운 좋게 얻었지만 그런 기회조차 없는 친구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호종료를 앞둔 친구들이 자립에 대해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꿈을 계획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