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동료·소록도 환우들에게

2010년 10월, 12년 동안 근무했던 첫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가슴이 후련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 흘렀습니다. 정들었던 동료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눈물로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뒤돌아보니 부족한 저에게 인내심을 갖고 대해 주셨던 팀장님과 선후배님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기에 죄송한 마음은 더욱더 커졌습니다.

일을 그만둔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한두 달 여유가 생기면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 ‘소록도 자원봉사’를 하러 전남 고흥군으로 떠났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죠.

집(수원)에서 소록도까지는 생각보다 멀고도 낯선 길이었습니다. 소록도는 사슴을 닮은 작은 섬이라는 뜻입니다. 대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옛날 머나먼 섬으로 유배를 갔던 사람들의 슬프고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한 첫날 밤, 20평 남짓 되는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10월은 자원봉사자가 뜸한 시기였기 때문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생면부지의 아저씨와 단둘이 그 넓은 방을 쓰게 됐습니다. 집을 떠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딸내미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족이 그리워졌고 달이 뜨면서 방 안으로 비치는 달빛은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섬 생활이 하루하루 쌓여 가면서 소록도 주민들의 이야기도 하나씩 알게 됐습니다. 아주 슬펐던 이야기 중 하나는 병이 완치된 이후에도 고향에 못 돌아가는 환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마을에서 내쫓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제가 맡았던 일은 노환으로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간병이었습니다. 새벽 5시쯤 기저귀 가는 것을 시작으로 세면, 식사, 양치 등 일상생활을 도와드렸습니다. 이렇게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드리고 틈틈이 산책을 시켜드리거나 말벗이 돼 드리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2주가 지나고 집에 오는 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인사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분들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어르신들과의 약속은 연말까지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달력에 적어 놓고 될 수 있으면 2021년은 넘기지 않을 계획입니다.

가까이는 회사 동료로부터, 멀리는 소록도에 계신 할아버지까지 많은 분께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쌓여가는 후회와 죄송함.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에서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 봅니다.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지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약속은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게 최선이자 멋있는 중년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종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