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황지형에게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뽑아 자리에 앉아 스크롤을 ‘드르륵’ 내리던 중 한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출산율 0.58명, 역대 최저 기록 또 갈아치운 서울시’. 학생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출산율의 개념을 떠올려보니 ‘아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습니다. 주변에 두 커플이 있다고 가정하면 한 커플은 아이가 하나이고, 다른 한 커플은 아이를 갖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작년 한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한 친구 커플이 대화 도중 ‘딩크족 선언’을 하자 다른 친구가 이유를 되묻는 대신, “맞아. 요즘 정말 애 키우기 힘든 세상이야”라며 담백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출산율 2.1명이 인구의 현상 유지 조건이라는데 이러다 진짜로 인구절벽 위기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다소 ‘쓸데없이 진지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상념도 잠시, ‘나 같은 직장인이 인구절벽까지 걱정할 필요 있겠어?’하며 기사를 닫았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말합니다. “용준이 구내염이래. 그래서 요 며칠 밥을 잘 안 먹고 칭얼거렸나 봐.” 이유식 시기부터 밥 먹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매 끼니 전쟁을 치렀던 첫째 딸 지민이와 달리 둘째 아들 용준이는 이것저것 안 가리고 잘 먹어주니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유식을 잘 안 먹고 칭얼거린 것이 입안이 아파 못 먹은 것이었다니, 아빠가 돼서 아픈 것도 몰라준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무심한 아빠 같으니.

아내의 표정을 살피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은 둘째가 먹을 일주일 치 이유식을 만드는 날이었다고 하네요. 냉동실을 보니 밀폐 용기에 소분된 21개의 이유식이 보입니다. 아내는 이유식을 만드느라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늦은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저녁 먹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얼른 손을 씻고 아이들 밥 먹이는 것을 돕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을 씻기고 잠시 놀아주다 재우고 나니, 저녁 식사 설거지가 남아 있었네요. 이럴 수가.

출산율이라는 지표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이 시국에 두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아내가 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외출을 했는데요. 반나절이긴 했지만 육아를 직접 체험해보니 아내가 슈퍼우먼처럼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신길동 슈퍼우먼’ 황지형 님께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보, 당신과 아이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야. 이렇게 큰 행운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
유진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