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건강가정지원센터 ‘아빠 맞춤형 교육’ 등 지원 사업

당진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워킹대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부녀가 주사위 게임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어느 날 집에 일찍 들어갔더니 초등학교 3학년 큰딸이 오늘은 왜 일찍 들어왔냐고 말하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경북의 한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조이규씨(40)는 9살, 4살 난 두 딸을 둔 맞벌이 부부다. 가사는 부부가 어느 정도 분담하고 있지만 솔직히 육아에는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조씨는 “일이 바쁘다 보니까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실제로는 주말에 시간이 나도 잠만 자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올 초 인근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아빠의 육아 참여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고민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터였다. 바빠서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환경이 혹시 아이의 성장발달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도 됐다고 했다. 지난 반 년간 그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이들과 직접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함께 숲속을 걸으며 나뭇잎을 관찰하고 도시락을 함께 먹기도 했다.




■아빠 육아, 자녀 발달에도 긍정적

“엄마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해요. 아빠가 같이 놀아주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는 본인은 벤치에 앉아서 쉬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 아이들이랑 산책하러 간다고 하고 음료수 한 병 사 먹이고 ‘나 아이랑 놀아줬지?’라고 말한다고 해요.”

장흔성 구미시건강가정센터장은 남성들이 ‘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가정주부로서 전적으로 육아를 도맡고 아빠는 바깥에서 돈만 벌어오면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이제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엄마가 육아를 주로 맡아야 한다는 통념은 남아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전국 2593가구를 조사한 2015년 보육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일에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자녀 수면시간 제외)은 엄마가 8시간42분, 아빠가 3시간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장 센터장은 “지금 어린아이를 키우는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와 놀았던 기억이 없는 세대라 가족 내에서 아빠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잘 모른다. 아이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아빠들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것은 여성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육아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아이의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육아정책연구소는 2013년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는 시간이 길수록 자녀의 표현어휘력 점수가 높고 친사회적 행동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긍정적으로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지난 5월 구미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빠와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빠와 아들이 화분에 식물을 심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빠 교육은

육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혼란스럽거나,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겪는 아빠들을 위해 정부는 전국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워킹맘·워킹대디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센터 6개소를 워킹맘·워킹대디 지원사업 운영 전담기관으로 지정한 데 이어 올해는 추가로 76개 건강가정지원센터 및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워킹맘·워킹대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전담 6개소는 주중 4일간 오후 12시부터 9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그 외 서비스 제공기관 76개소에서도 주 1회 이상 야간운영과 월 2회 주말운영을 정례화했다. 센터에서는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같은 직장 고충상담, 자녀의 생활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돌봄서비스 등 맞벌이 가정에 꼭 필요한 양육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센터들은 각각 특색있는 ‘아빠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 시흥시건강가정지원센터는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 전문가를 초청해 알아보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충남 당진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일주일 중 한끼 정도는 아빠와 아이가 직접 만들어 먹어보자는 취지로 아빠와 함께하는 요리교실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아빠와 함께 근교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지난 5월 구미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요리교실 ‘패밀리 셰프’ 프로그램에서 아빠와 딸이 함께 채소를 썰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장 센터장은 “이런 교육을 통해 앞으로 남성들이 가족 내에서 양육과 돌봄의 역할을 함께 분담하게 되면 이후 세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바람직한 아빠의 역할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와 아이들이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가족 관계와 일상은 크게 달라진다. 조이규씨는 “주말마다, 퇴근 후마다 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니, 관계가 크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빠에게 필요한 말만 건네던 큰딸은 요즘 들어 말이 많아졌고 아빠에게 한층 친근해졌다. 조씨는 퇴근하면 눕는 대신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거나 큰딸의 학교 숙제를 봐준다. 아내는 그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지난주에는 남해로 여행을 가 갯벌 체험을 즐기고 돌아왔다. 조씨는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욱 많이 보내려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를 위한 육아정보는 건강가정지원센터 홈페이지(http://www.familynet.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초보 아빠들에게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 후 1년간 아빠가 해야 할 일을 담은 ‘아빠 수첩’도 제작해 이달 말 배포하기로 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