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작년까지 아버지와 시골에서 평생 살아오신 엄마. 아버지는 건강하셔서 시골집에서 치매 4급 환자인 엄마를 돌보며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 당신도 88세의 적지 않은 연세로 힘이 들만도 하신데 자식들한테 단 한 번도 기대려고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폐암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시한부 판정을 받으시고 6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치매 걸리신 엄마를 두고 훌쩍 떠나버리셨습니다. 아버지,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모든 근심 걱정 잊고 편히 사세요. 엄마는 제가 아버지께 살아생전 약속드린 대로 저희 집에서 모시고 잘살아가고 계십니다.

치매로 유치원생이 돼 버리신 엄마는 두 가지 행동을 이어서 한 번에 못하십니다. 한창 건강하실 때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자식이 올곧게 장성하기만을 바라면서 제가 잘못했을 땐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훈육하셨는데 이제 그런 기력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엄마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화장실에 가시면 항상 사용한 화장지를 방에 가지고 들어와 이불 밑, 책상 뒤쪽 서랍 등 곳곳에 숨겨놓는 바람에 하루도 빠짐없이 보물찾기를 하지만 그런 엄마와 살아가는 지금이 아들은 포근하고 행복합니다. 목욕할 때 정신이 돌아오시면 엄마는 항상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나 때문에 아들이 고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엄마 등을 밀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하실 때 저는 항상 이야기합니다. “엄마,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가 목욕 많이 시켜줬잖아. 지금은 아들이 엄마 목욕시켜 주는 게 뭐가 미안해….” 엄마는 깔깔 웃으시면서 “아들이 맞는 말 하네”라고 하십니다.

치아가 모두 망가지셔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아침에는 영양 죽과 단백질 보충을 위해 두세 가지 반찬도 곁들여 드립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 돌봄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순간순간 난감할 때가 있어서 치매 관련 환자 케어 방법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생이 돼버린 엄마라서 앞으로 100년은 더 사실 거라 생각하면 아들은 행복합니다. “엄마, 오늘도 한 가지라도 더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알았지? 엄마 파이팅입니다.”

남들은 치매 엄마를 모시니까 효자라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엄마가 저 지경이 되도록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치매라는 병마가 이토록 무섭고 힘든 병인지는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반드시 이겨내 엄마가 건강을 되찾길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아들 한도현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