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남짓 함께 일하면서 당황한 표정은 봤지만, 화를 낸다거나 짜증 난 얼굴은 한 번도 못 봤다. 우리 복지 팀원 6명 중 유일한 42세 된 청일점이다. 만나는 주민마다 “이 주임님은 딴 데 보내면 안 돼요. 청장님에게 말해서 우리 동에 남게 해달라고 말할 거예요.” 직장 내 전보 발령 인사 때마다 이 주임을 각 부서에서 스카우트하려고 아우성이다. 조직 내 인물됨의 소문은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복지팀의 일은 어렵다. 잘게 쪼개진 복잡한 사회복지업무도 그렇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더욱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이 주임에게 어느 날 민원 전화가 왔는데 시간이 흘러 2시간이나 통화를 하고 있지 않은가. 끝까지 상대에게 부드럽고 정중하게, 때론 침착하게 응대한다.

“어머님, 잘 알겠습니다. 네, 아픈 마음 이해합니다. 힘내셔야죠.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드릴게요.” 상대방에게 희망과 밝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옆에서 귀동냥으로 듣는 나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구청에서 친절교육 때 받은 매뉴얼에 따른 습관이 아니다. 본성과 기질이 타고났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로 몹시 힘들었을 이 주임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분이 그렇게 전화를 안 끊어. 무슨 내용이야?” “기초수급자는 아니고 몹시 어렵대요. 남편은 의사고 외국에 나갔는데 자기는 지금 괴롭대요. 말을 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제가 보기에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이후 길고 긴 통화 줄을 놓지 않던 그분에게서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전화뿐 아니라 방문 민원 모두의 말을 경청한다. 또한 친절한 태도로 자세하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직원과의 소통도 항상 진중하다. 업무, 개인적인 일, 소소한 농담도 흘려 듣지 않고 상대방에게 언제나 피드백을 준다. 이래서 직원, 주민 모두 이 주임 매력에 흠뻑 빠진다. 팀장인 내가 보더라도 멋있는 놈이다. 일분일초가 항상 분주하고 바쁘다. 컴퓨터에 매달려 방문한 수급자에 대한 상담 내용을 입력하랴, 입력 중 찾아오는 민원을 응대하랴, 구호품을 배달하랴, 바라만 봐도 숨이 가쁠 상황인데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다.

또한 커다란 덩치와 함께 술도 가리지 않고 잘 마신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장인에 대한 그의 술 장단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다. 두주불사였던 장인의 술 사랑을 위해 틈틈이 장인이 좋아하는 닭발을 시장에서 사 들고 찾아뵙고는,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장인의 옛날이야기에 장단을 맞추어 대작해줬다. 요즘도 장모님의 아픈 다리와 무릎을 매일같이 1시간씩 주물러드린다.

이 주임! 3년 동안 너랑 같이 일해서 행복했다. 조직 생리상 헤어질 때가 됐네. 40세 어렵게 가진 네 살 된 너의 딸!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사진을 올려놓고 넋 나간 미소를 짓는 이 주임은 역시 딸바보네! 딸의 모습을 바라볼 때 너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야.
임형빈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