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각종 급여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혼자 사는 50대 남성들은 이 복지제도의 수혜대상에서 빠져있다. '50대는 아직 한창 일할 때'라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에 갇힌 저소득 50대 독거남성들은 '근로능력이 있다'는 성급한 판단에 따라 복지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장기화되는 불황 속에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심지어 자기자신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50대 독거 남성들은 사실 그 어떤 기초생활보장자나 차상위계층보다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난 김씨의 웃음

지난 7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다가구주택. 올해 50세가 된 김모씨를 만났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눴지만 악력은 두툼한 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눅눅한 방인 탓에 구석에는 여지없이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한뼘도 채 안 되는 제습제 하나가 나방처럼 벽에 붙어있었지만 방안의 습기를 빨아들이기는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20대에 홀로 상경해 LPG충전소 일이나 신문배달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지난날을 되짚었다. 다부진 체격과는 대조적으로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듯한 그에게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김씨는 반려자도 없이 근근이 생계를 꾸리다 극심한 우울증 끝에 자살을 시도하다 그 후유증으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돼 일하기 힘든 몸 상태가 됐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어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자살도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는 자살 시도후 건강이 나빠지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더운 여름에도 대문과 창문을 잠그고 지냈고 그렇게 무려 2년이 흘렀다. 김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된 것이었다.

바깥출입을 장기간 끊고 월세(20만원)도 계속 체납되자 집주인은 동주민센터에 김씨의 사정을 알렸고 지난해 1월 김현진 양천구 복지정책과 희망복지팀 사례관리사가 김씨를 찾아오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김 사례관리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이제 교회도 1주일에 3번씩 나가며 이따금 햇볕을 쬐고 있다. 김 사례관리사의 도움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 자격까지 얻게 된 김씨는 각종 급여도 받아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김 사례관리사는 "김씨가 겉으로 보기에 근로능력이 있어 보이고 나이도 65세 미만이니까 그동안 (정부로부터)수급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며 "수급자가 되려면 (우울증) 치료기록이 있어야 하니 치료를 받는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고 김씨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김씨 역시 희망을 말했다. 여전히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였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예전 집에만 있을 때는 죽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나와 생명은 소중하다는 생각, 함부로 자살 같은 것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들게 해줬다"며 "몸 상태가 좋아지면 용기를 내서 일하고 싶다.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역전 실마리 찾은 한씨

양천구 신정동 SH공사의 매입임대주택. 이곳에는 오랜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보금자리를 마련한 53세의 한모씨가 살고 있다.

악수를 하며 쥔 한씨의 손은 겨울이 지난 지 한참 됐는데도 터 있었다. 말투는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어눌했다. 어릴때 배가 고파 막걸리를 마시곤 했던 게 단초가 돼 계속 음주를 하게 됐고 이는 지금도 한씨를 괴롭히고 있는 알코올 의존증의 원인이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던 한씨는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알코올 의존이 심해져 오래도록 '난방을 깠다(노숙한다는 의미의 은어)'고 한다. 그러던 한씨는 3년전쯤 양천구 복지정책과 희망복지팀 사례관리사인 배기옥씨를 만났다.

배 사례관리사는 출퇴근길에 한 낡은 빌라 근처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노숙을 하던 한씨를 발견했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배 사례관리사는 한씨를 동사무소에 데려가서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원하고 고시원에 숙소를 마련해줬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위해 한씨를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그러자 한씨의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인정받은 한씨는 매달 받는 50만원의 급여중 일부를 3년간 주택청약저축통장에 저금했다. 배 사례관리사의 도움속에 신용을 회복한 한씨는 지난해 11월 주택 청약에 당첨돼 현재 거주하는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사하기에 이르렀다.

정처없이 떠돌던 한씨는 이제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을 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노숙인의 티를 벗었다. 이른바 인생역전을 위한 실마리를 찾은 한씨는 집 마련을 도와준 배 사례관리사를 누나라고 부른다. 그는 "내가 누나를 믿고 여기까지 왔다. 누나가 나에게 많이 맞춰줬다"며 "누나가 고생했지, 내가 고생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지난 설날에는 예고도 없이 양천구청을 찾아가 배 사례관리사에게 큰절을 하기도 했다.

한씨는 이제 교회에 나가 겨울철 눈 쓸기 봉사와 배식 봉사를 할 정도로 사회에 녹아들고 있다고 한다. 한씨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도 조만간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나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도와가면서 사는 게 좋다"며 다른 노숙인들을 돕고 싶다고도 말했다.

배 사례관리사는 "주변에 고시원에 계신 (노숙인)분들이 나에게 연락을 한다. 우리도 (한씨처럼 내) 집에 갈 수 있느냐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으면 도와주겠다고 얘기했다"며 "주변에서 한씨를 부러워하고 있다. 자신들도 청약저축에 가입해서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있다"고 주변 노숙인들의 변화상을 전했다.

배 사례관리사는 또 "예쁜 집이 생겼으니 결혼도 해야 하지 않냐며 새로운 일을 하자고 한씨를 격려하고 있다"며 "한씨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면 주변에서 모두 부러워할 것이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한씨처럼 해야지'하며 재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SOS 양천구 50대 1인男 404가구

이 두사람 외에도 양천구 관내에는 50대 독거남이 많다. 양천구가 2월부터 양천구 거주 50대 남성 1인 가구 6800여가구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원이 필요한 가구는 404가구(5.9%)였다.

404가구 중 고독사 고·중위험군에 해당하는 50대 독거남 96가구를 대상으로 개인별 욕구를 조사한 결과 생계·주거에 대한 욕구 61명(43.3%), 건강에 대한 욕구 47명(33.3%), 일자리에 대한 욕구 15명(10.6%), 정신건강에 대한 욕구 9명(6.4%), 주거개선에 대한 욕구 7명(5%), 가족관계 회복 등에 대한 욕구 등 2명(1.4%) 순이었다.

이에따라 양천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50대 독거남의 사회적 고립과 이로 인한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비남(男)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나비(非)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김씨와 한씨 같은 양천구 거주 50대 독거남은 앞으로 구청·동주민센터와 접촉하며 재기를 꿈꾸게 된다.

사례관리사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과 양천구의 나비남 프로젝트가 김씨와 한씨를 우울과 섬망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했듯이 우리 사회도 그간 애써 외면해온 홀로 된 50대 남성들의 문제들을 직접 대면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인정하고 그들이 고독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야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