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합니다 - 유연옥 할머니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할머니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에겐 좀 더 특별한 할머니의 사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10살쯤인가. 할머니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우린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던 꿈이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꿈속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할머니와 같은 나이, 세대를 살아가는 단짝 친구가 되어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팔짱을 낀 채 가요를 부르고 무지개색 솜사탕을 먹으며 깔깔 웃었던 게 너무 즐거웠던 꿈이었는데 깨고 나니 꿈이 아닌 현실도 마찬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미 나에게 친한 친구 같은, 여전히 진실한 사랑을 주고 계셨구나.”

미국에서 태어난 저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주신 우리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저를 바라보시는 미소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십니다.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돌아 할머니는 제가 보고 싶어질 때면 항상 저를 찾아와주셨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우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할머니가 한국으로 떠나시고 나면 언제 또 오시냐고 엄마에게 여러 번 물어봤었는데…. 할머니와의 추억은 달콤한 기억뿐입니다.

기억해보니 미국에서 엄마와 저는 2층 타운하우스에 살았었고 그 집이 썰렁하게 느껴질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매번 우리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대한 간식 상자에서 캐러멜과 초콜릿을 한 움큼 꺼내어 함께 보물찾기 놀이를 해주신 기억이 생생합니다. 5살에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지금까지 저와 할머니는 세기를 뛰어넘은 단짝 친구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바쁜 엄마 대신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지금은 함께 한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할머니와 저는 정말 그 꿈처럼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 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할머니와 쇼핑을 가고, 맛집 탐방을 하고,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고, 또 담소를 나누는 사이는 주위 친구들에겐 흔치 않나 봅니다. 가끔 외로울 때가 생겨도 금세 할머니의 사랑이 제 허전한 마음을 꽉 채워주십니다. 저는 지금도 아프거나 힘들 때 두말할 것 없이 자석처럼 할머니를 꽉 끌어안습니다. 그러고 나면 거짓말처럼 따뜻한 할머니의 사랑과 온기가 저를 치료하고 보듬어 줍니다. 완전한 사랑을 제 마음에 가득 채워주신 우리 할머니는 바라만 봐도 그립습니다.

할머니가 제게 주신 무한대 사랑을 백배로 부풀려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엄마와 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워주신 나의 할머니, 유연옥 할머니를 너무 사랑합니다. 저는 이제 어엿한 20살이 되었습니다. 13개 지원한 대학 중에서 결과를 4월까지 기다린 뒤 가게 될 대학이 결정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가을이면 미국 대학에 입학해야 해서 한국을 떠나야하는 것입니다. 지원한 대학 중에서 예상치 못했던 명문대에 합격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행복했습니다. 지금 저에게 한 가지 큰 걱정이 있다면 사랑하는 할머니를 매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할머니 얼굴에 주름이 한두 개씩 늘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흰머리도 점점 많이 생겨나고 발걸음도 예전에 비해 느려지신 우리 할머니. 저는 그런 우리 할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할머니, 항상 건강하셔야 해요. 제가 한국에 올 때마다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우리 다음 생에도 단짝 친구로 태어나서 함께 늙어가요. 온 맘 다해서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손녀딸 조윤서 드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