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식에서 고모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큰아빠(왼쪽).
■ 그립습니다 - 이호진(1968~2004)

“정말 둥글게 살았던 사람이라 특이한 점도 없었어.”

가족 모두에게 이호진이라는 사람, 큰아빠에 관해 물어보면 다 똑같은 말을 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완벽한 장남의 기준에 모두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입사해 가족의 자랑이었고 정상성의 표본 같은 사람이라 가족들 모두 그를 기억할 특별할 에피소드도 없다. 올바르게 살았더니 너무 올바르다는 이유로 기억하기 힘든 사람이 됐으리라. 그렇기에 그와의 추억도 별로 없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매우 어려서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던 조카인 나라도 글로써 기억해 보고자 한다.

그는 너무 우직해 오히려 바보 같을 때도 있었다.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러나 부모가 대학의 좋은 간판을 바라자, 당신이 원하던 학교와 학과를 버렸다. 좋은 회사에 입사했어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업무와 맞지 않아 늘 괴로워했다. MZ세대인 나는 ‘그냥 그만두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어른의 숙명이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볼멘소리 없이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나 역시 20대의 짧은 인생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게 됐다. 그가 살아 있다면, 아집이 세고 불같은 조카에게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중요성을 알려줄 훌륭한 조언자가 됐을 것이다.

그의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의 일탈은 불현듯 찾아온 사고사였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가족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게 그가 유일하게 모두의 속을 썩인 일이었다. 그가 영안실에 있다는 병원의 전화가 오기 직전, 어린 내가 영안이라도 있는지 “큰아빠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잠을 청하던 가족들을 깨운 게 그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정말이지 당신을 주로 기억하는 게 죽음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어렸기에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위인전의 인물처럼 구전으로 들어왔다. 그 덕분에 나는 당신을 대단하고 배울 점이 많은 스승으로 묘사할 수 있다. 모두가 당신이 평범했다는 이유로 평범하지 않은 죽음부터 생각할 때, 나는 당신의 그 대단한 평범함을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인을 추모할 때 슬픈 감정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고인을 ‘평범히’, 예의 있게 대우하는 방법일 것이다. 고인도 사람들이 자신을 회상할 때 함께 했던 일상의 추억들을 돌아보고, 행복한 정서를 떠올리길 바랄 것이다. 평범한 그를 평범하게, 건설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그를 많이 기억하게 해주고 그가 우리 기억 속에 살아갈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당신의 납골당 자리에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당신을 기억하러 왔다며 몇 년간 쪽지를 붙이는 당신의 친구들이 온다. 당신을 슬픔으로만 회상하지 않고, 우직하고 좋은 친구로서 평범히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범적인 형제이자 자식이었기에 특이했던 죽음만이 기억돼 버리는 나의 큰아빠.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평범함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자 한다. 나에게 둥글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스승. 하늘에서도 우직하고 올곧게 가족들을 기다릴 당신을 슬픔으로만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p.s. 당신이 간 대학 옆의 여대생이 됐다. 고대생 남친이 안 생기는 걸 보니 내 얼굴은 평범에도 못 드는 것 같아 좀 서글프다. 하하!

큰조카 이현솔(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재학·학보사 편집장)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