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균 홍성군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장]
사업 예산 없어도… NGO·모금회 문 두드려
28년 전 소녀 가장 도운 뒤 아동복지에 관심
"사회복지 중요, 더 많은 관심 필요해" 당부

이오균 홍성군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장이 7월 7일 홍성읍에 위치한 발달지연아동 치료기관 '홍성꿈자람센터'에서 미소짓고 있다. 홍성=김나연 기자
"6월 말에 도배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지난달 7일 충남 홍성군 '홍성꿈자람센터'에서 만난 이오균(52) 홍성군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장이 말했다. '인생 2막'이나 '노후 대비'일 거라 짐작했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홍성군에서 아이들 방 만들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예산이 적어 지인들 도움을 받고 있는데, 도배 일은 손이 모자라서 제가 직접 땄어요."
 

이오균 팀장이 6월 27일 취득한 도배기능사 자격증. 이 팀장 제공
방 만들기는 개인 공간이 없는 취약 계층 아이들을 위해 이 팀장이 기획한 사업이다. 군 예산이 없어 작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집 10곳을 고쳐줬다. 부족한 인건비는 10년째 몸담고 있는 자원봉사 모임 '보름회' 회원들의 봉사로 해결했다. 문제는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도배였다. 이 팀장은 아예 도배를 직접 배우기로 했다.

홍성군엔 도배 학원이 없어 그는 6개월간 매주 토요일 오전 7시 기차로 천안에 가 수업을 듣고 오후 9시에 돌아왔다. 직장인이 가욋일에 이만한 노력을 쏟는다는 게 믿기 어렵지만, 이 팀장은 반대로 말했다. "저도 월급 받고 직장을 다니니까 (생활이 안정된 만큼) 봉사 개념으로 할 수 있죠." 그는 올 초 가족행복과에서 복지정책과로 옮겼지만 방 만들기 사업은 현 부서로 가져왔을 만큼 애정이 크다.

방 만들기 외에도 놀이터, 도서관, 돌봄센터 등이 합쳐져 온 가족이 머물 수 있는 복합공간 '홍성가족어울림센터'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국비 50억 원, 도비 25억 원, 홍성군 124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동료들과 정부 공무원들을 열심히 설득해 국비를 땄어요." 2022년 개소한 센터 이용객은 하루 500명, 연평균 9만5,000명이 넘는다.

전국 최초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감각통합치료센터(발달지연아동 치료시설) 홍성꿈자람센터를 지은 것도 이 팀장 기획이었다. 앞서 2019년 이 팀장 주도로 홍성군은 영유아 2,327명에 대한 발달평가를 진행했는데 225명(9.6%)이 발달지연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 통계가 꿈자람센터 건립의 기반이 됐다. 꿈자람센터 옆에 장애 아동이 놀 수 있는 배리어프리 놀이터 '통합놀이터'를 설치하는 사업도 이 팀장이 추진했다.
 

6월 2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감각통합치료센터(발달지연아동 치료시설) 꿈자람센터 내부.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설치돼 있다. 이오균 팀장 제공
사실 놀이터 예산까진 없었다. 그래서 '놀이터 만들기' 사업을 하던 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에 지원을 요청했다. 최종적으로 이 팀장이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이 대한전문건설협회에서 후원을 끌어와 사업이 성사됐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일궈낸 일이다. 이 팀장과 여러 차례 협업한 한 NGO 관계자는 "이렇게 아동복지에 진심인 공무원은 처음 봤다"고 귀띔했다.
 

28년 전, 두드렸더니 길이 열렸다

처음부터 아동복지에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이 팀장은 영업직 회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정신병원 직원으로 이직했다. 병원 사회복지사들의 권유로 사회복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원도 진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래를 위한 준비 차원'이었다. 떠밀리듯 시작한 공부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사회복지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1997년, 그는 다짜고짜 면사무소로 가 "동네에서 제일 어려운 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삼남매에 할머니까지, 네 식구가 살던 소녀가장 집을 알게 됐다. 그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밥을 먹이고, 목욕탕을 데려간 게 이 팀장이 처음 몸으로 배운 '사회복지'다.

아이들의 집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쥐가 어찌나 많은지, 사람을 무시하고 돌아다니더라고요." 이 팀장은 사비로라도 집을 고쳐주기로 결심했다. 적금을 깨러 간 은행에서 우연히 병원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다니는 성당에서 걷은 이웃 돕기 성금을 어디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곧장 삼남매 집을 연결해줬고, 성금으로 집을 고쳤다. 상한 가전제품도 바꿔주고 싶어 이번엔 삼남매 사연을 여기저기 알리자 중고 가전업체 사장에게 '필요한 가전을 전부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느낀 거예요. 부딪치지 않고 포기하면 바뀌는 게 없지만,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길은 생긴다는 걸."

28년간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 삼남매는 지금도 이 팀장의 버팀목이다. "소진될 때면 그 친구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을 되새겨봐요. 그럼 불편해도, 바빠도 조금 더 해보게 되니까." 보람이 주는 힘을 잘 아는 이 팀장은 다른 단체와 협업할 때 수혜자들의 기쁨과 감사를 협력단체에 꼭 전한다.
 

"좋은 정책, 많은 이들이 수혜받아"

이 팀장이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입직한 건 2001년이다. 공무원에 도전한 이유도 "정책 하나 잘 만들면 많은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어서"다. "기업이 1억 원을 남기면 직원들에게 돈이 돌아가지만, 홍성군의 1억 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잖아요."

없는 예산을 따 오고, 자격증까지 딴 건 열악한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라도 바꿔 보려는 분투이기도 하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사회복지도 정말 중요한 일인데,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경기가 어려워지면 관심도 예산도 줄어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회복지 정책이 더 관심을 받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