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인·여자란 편견 노력으로 깼어요” | 사무국 | 2008-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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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것보다 동양인이라는 게 더 큰 벽이었다. 지휘자 성시연(32)은 ‘정성’으로 그 벽을 넘었다. 곡이 정해지면 먼저 도서관에 달려가 관련된 책들을 섭렵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음악적 이해는 부족하다는 동양인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음악적 편견부터 깨고 싶었다.
피아노 대신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 오른 지 6년, 지휘봉은 그의 정성에 화답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지난해엔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고, 10월엔 미국 5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보스턴심포니 부지휘자에 선정됐다.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연주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에선 첫 무대”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2002년부터는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지휘봉을 잡은 까닭이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주변에 음악을 전공하는 분이 계신데, 제가 지휘하시는 모습을 보시곤 ‘성시연씨의 것을 찾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분들은 지휘봉을 권력과 비교해요. 지휘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면을 부각한 거죠. 개인적으론 그런 것보다 지휘봉 끝에서 우러나는 단원들과의 교감이 매력적이었어요.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죠.”
레코딩이 보편화된 이후 지휘자의 색채가 흐려진 것도 그에겐 깨야 할 벽이다. 그는 “레코딩이 일반화되기 전엔 어떤 교향악단이든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했다”며 “레코딩의 의존도가 높아져 그만큼 색깔이 비슷해졌다”고 아쉬워했다. 그의 지휘법은 곡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방점을 찍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음악에 충실하려고 한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스타일인 거 같아요. 음악을 앞에 두는 게 제 스타일인 셈이죠.”
오페라 ‘마술피리’로 첫 무대에 섰던 그는 브루크너, 말러 등의 작품을 꿈꾼다. 11월 네덜란드 로테르담필하모닉 무대에선 아직 레퍼토리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하고픈 곡으로 꼽았다.
“물론 말러 교향곡 같은 것은 대작이라 지휘자로서 어느 정도 연륜을 갖췄을 때 하는 작품이에요. 지도교수였던 롤프 로이터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말러가 자기 딸을 잃고 죽음에 대해 노래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곡가가 그려낸 ‘죽음’에 깊게 공감했어요. 언젠가는 이 작품을 꼭 지휘하고 싶어요.”
국내 첫 무대에선 슈만 피아노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들려 줄 계획이다.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와 보스턴 심포니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더욱 바빠지겠지만 지휘봉을 쥔 그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다.
“동양인이라,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이 활동하다 보면 까다롭게 다가설 때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게 큰 벽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특별한 느낌이었다고 말씀해주는 분들이 많으세요.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힘든 것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평생 같이할 친구를 만나서 그런 가봐요.”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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